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치훌이라는 산골마을에 살았다. 지금이야 고급 별장들이 들어서 웬만한 사람들이 살기에는 너무도 비싼 동네가 되었지만, 내가 어릴 적 그 동네는 가난한 사람들이 쉐라톤워키힐을 지나 구리시로 가는 아차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살던 소박한 마을이었다. 마을 중간에 흐르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양지말과 음지말로 나누어 살았는데, 양지말에는 작지만 이것저것 그래도 궁색한 삶에 필요한 것들을 팔던 가게가 있었고, 언덕 위에 교회도 있었고, 동네에서 딱 하나밖에 없는 흑백 TV가 있는 이장집도 있었다.

나는 과수원이 있는 음지말 초가집에 살았다. 겨울이면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 뜨끈뜨끈해진 아랫목과 달리 윗목은 걸레가 땡땡 얼어버릴 정도로 웃풍이 센 그런 집이었다. 창호지에 마른 꽃으로 멋을 낸 방문 손잡이는 손이 쩍 달라붙을 정도로 차갑고 냉정했다.

요 며칠 동장군이 씽씽 칼바람을 타고 온 우주를 활보하는지 너무너무 추운 날의 연속이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강추위다. 문득 어릴 적 그 아치훌의 겨울이 생각이 난다.

그 겨울 까마귀가 하얗게 얼어 죽었으니 얼른 일어나야 한다는 엄마의 놀란 목소리와 함께 이불이 확 걷히면,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면서 하얀 까마귀 시체를 보려고 문부터 열어 보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매번 엄마의 그 거짓말에 속으면서도 한겨울 아침 오늘은 혹시나 하는 기대로 방문을 열곤 했다. 그 기대는 다름 아닌 간밤에 눈이 내렸는가 하는 그런 기대였다.

내 순수했던 마음이 이제는 퇴락했는지 이 추위에 하얀 눈을 기대하기보다는 보일러 기름이 다 떨어져 가는데 큰일이 났다는 생각이 먼저 일어나고, 수도가 동파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아무리 강추위가 와도 따뜻한 봄날은 올 것이다. 이 매서운 추위 덕분에 어릴 적 추억도 잠시 떠올려보게 된다.

민성숙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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