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은 군대 징집제도로 모병제를 택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하면 전시징병제다. 평시에는 자원자로 운영하는 모병제를 유지하다가 전시가 되면 대상자를 강제로 징집하는 시스템을 취한다. 미국은 2차대전에 참여하면서 징병제를 실시했고, 전쟁이 끝나서 징병제를 폐지했다가 한국전쟁 때와 베트남전 때 한시적으로 징병제를 실시했다. 베트남 전쟁 동안 미국의 모든 젊은이들은 1년 6개월 동안 의무적으로 군대에 있어야 했다.

《트루스, Truth》(2015) 포스터

대부분 베트남으로 가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미국 본토에 남아서 방위군으로 근무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집안 사정이 있거나 신체에 이상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방위군으로 남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고위층 집안의 자녀들이 부모의 후광을 등에 업고 방위군으로 남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미국의 43번째 대통령인 조지 부시는 41번째 대통령을 지낸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대통령이 되었다. 조지 부시는 집권기간 중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과 이라크 전쟁(2003년)을 주도했다. 2002년 국정연설에서 부시는 북한·이란·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표현하면서 집권 내내 전쟁의지를 불태웠다. 부시는 국제사회의 여론을 무시하면서 일방적으로 전쟁을 벌였고, 전쟁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비 애국자’라며 맹렬하게 비난했다. 조지 부시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쟁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조지 부시가 당시 징집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전에 참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베트남 참전을 꺼려 주 방위공군에 지원했으며 테스트에서 저조한 성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합격돼 줄곧 주 방위공군으로 지냈다. 또한 의무복무기간 중 1년가량 복무기록이 전혀 없어 그가 의무에 충실하지 않고 탈영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남들보다 8개월 앞당겨 명예 제대해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는 놀라운 이력을 과시했다.

영화《트루스, Truth》(2015)는 2004년 조지 부시의 베트남전 도피를 고발한 미국 CBS 방송의 ‘60 Minutes(추적 60분과 유사한 프로그램)’의 진행자 ‘댄 레더’와 PD였던 ‘메리 메이프스’가 실제로 경험했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적어도 미국의 언론은 정치적 외압을 잘 견딘다. 언론 프로그램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압력을 가하는 것이 수치스러운 짓이란 것을 안다.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으며 부조리한 것에 대해 어떻게 밝혀야 하는지를 알아 그 길을 걸으려 한다. 국가의 가장 상위에 있는 법률은 언론인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으며 그 방어막 안에서 언론인은 바른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법률을 자기 발아래 두려는 행위는 독재자만이 취하는 극악한 짓이란 걸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언론은 한 나라의 민주주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권력자를 향해 듣기 좋은 말로 아부를 하거나, 자기 검열을 통해 스스로 자기 입을 통제하는 비겁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언론의 바른 행태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감추려는 거짓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있는 용기 있는 언론이 더욱더 절실하다.

 

이정배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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