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미국을 찾으러 왔다.(All come to look for America)”

‘가능성 없는 후보’(워싱턴포스트) 버니 샌더스가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달굴 아이오와 코커스에 앞서 출시한 TV광고의 배경음악 가사다. 1분짜리 이 영상은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른 ‘아메리카’에서 따온 노래와 함께, “버니 샌더스입니다, 이 메시지에 찬성 합니다”라는 그의 육성으로 끝난다.

샌더스 바람은 변화를 바라는 미국시민들이 그를 통해 위임권한을 행사하려는 자발적 정치기획이라 부를 만하다. 그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어낸 데는 친 월가, 친 기업정책을 고수해온 클린턴과의 차별화를 통해서였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잇따른 월가 점령운동과 최저임금 시위, 소득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미국사회를 덮치면서 분출하기 시작한 유권자들의 변화 욕구를 정확하게 읽었다.

그의 공약은 대부분 친 서민 정책이고, 시간이 갈수록 풀뿌리 서민층의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 국가가 전 국민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주고, 사립대를 제외한 공립대학원까지 무상교육을 펼쳐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미국의 모든 지역에서 시간 당 15달러 이상의 최저임금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은 의료·교육 공약 실현을 위한 선행정책이다. 재정확보를 위해 월가의 투기자본과 버진 아일랜드 등의 조세피난처 관리를 통한 증세 약속 역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샌더스의 서민정책 공세로 클린턴은 적극 찬성해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 지지철회를 선언해야 했다.

새로운 기록은 또 있다. 샌더스는 미국의 정치판에서 생존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정치후원금 모금에도 성공했다. 그는 지금까지 68만1천여명으로부터 4천1백50만달러(4백15억원)를 모금했다. 월가의 소수 큰 손으로부터 나오는 클린턴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개미 참가자들의 참여가 눈길을 끈다. 모금액 역시 큰 차이가 없다.

샌더스의 고민도 있다. 상승세를 타고 있는 그가 경선과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자신을 지지하는 젊은층을 대거 투표장으로 불러내야 하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지난해 11월 치른 미국지방선거 투표율은 37%였다. 30대 이하는 20%였다. 대의민주주의 정신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결과였다. 샌더스가 젊은 유권자들에게 “정치가 밥 먹여 준다. 그러니 참여해라!”거나, “젊은이가 참여하지 않으면 나는 당선될 수 없다”며 ‘예스, 보트’ 운동을 벌이는 이유다.

샌더스 의원의 방에는 1900년부터 사회당 후보로 미국대선에 다섯 번이나 나선 전설적인 노동운동가 유진 뎁스의 사진이 걸려있다. 샌더스가 뎁스의 정치적 상속자임을 상징한다. 샌더스는 또 자신 역시 민주사회주의자라면서 뎁스를 미국의 영웅 가운데 한 명으로 꼽고 있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샌더스는 두 번째 경선지인 뉴햄프셔주에서 클린턴을 앞서나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주에서는 접전을 벌이고 있다. 만약 샌더스가 두 곳 모두 이기면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선결과와 상관없이 샌더스가 벌여온 캠페인은 미국사회에 새로운 정치대중이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건 1세기 전 유진 뎁스가 희생을 무릅쓰고 대선에 출마해 새로운 노동자시대를 열어 제친 것 이상으로 역사적인 사건이다.

고광헌 (시인·한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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