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얼어붙은 소양강물을 바라본다. 계절이 정점에 와 있다는 것은 곧 바쁜 계절도 지나가리라는 것이다. 책을 만드는 내게 겨울은 항상 혹독한 계절이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도 분주했다. 십여 가지의 각기 다른 성격의 책을 머리에 담고 있으면서, 편집기획과 제작을 동시에 진행했다. 다행히 오랜 세월을 같이하는 편집디자이너와 말귀 잘 알아듣는 새내기 직원이 책임자로서의 바쁜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같이 해주었다.

책을 만드는 일은 우선 원고를 파악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다음 성격에 맞는 판형을 선택하고, 원고나 사진의 구성을 위한 편집디자인을 한 후엔 그에 맞는 종이를 선택해 인쇄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책의 장정, 곧 책의 겉장이나 면지, 그리고 코팅 등 유려한 장정을 위한 2차 가공을 하고 나서 성격에 맞는 제본방식을 택해 제본을 한다.

책을 처음 열면 표지 안쪽에 본문보다 약간 두꺼운 종이로 구성되어 있는 면이 있다. 그것을 ‘면지’라고 한다. 면지의 역할은 책장을 열자마자 곧바로 내용이 펼쳐졌을 때 느껴지는 답답함을 덜어보자는 의도로 삽입하는 것이다. 처음 편집을 시작했을 때 면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몰랐다. 지금 내게 면지는 설렘의 장이다. 책을 처음 열었을 때의 궁금증을 잠시 덮고 담담한 마음으로 다음 장을 여는 그런 페이지다.

그런 만큼 제작을 하면서 정성을 다해 면지를 고른다. 때론 표지와 어울리는 색을 골라 통일성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보색을 띠게 하여 강렬한 느낌으로 책을 열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신중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면지가 좋아 책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말은 더더욱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면지를 보며 편집자의 마음을 읽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 면지 같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급한 마음을 잠시 접고 기다릴 수 있는 지혜와 보이는 겉모양에 어울리는 속 깊은 내면 같은 그런 ‘면지 같은 삶’ 말이다.

오늘도 막 출간된 책을 펼치며 면지의 조화로움에 스스로 만족해한다. 이제 비로소 그런 말에 공감할 줄 아는 후배를 키우는 맛도 출판이라는 한 분야에 오래 집중했던 또 하나의 재미이기도 하다.

원미경 (산책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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