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작업실] 강원의 소리를 찾으려 사재를 쏟아 부은 소리꾼
[작가의 작업실] 강원의 소리를 찾으려 사재를 쏟아 부은 소리꾼
  • 오동철
  • 승인 2016.01.26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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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라 선생, 춘천의병아리랑 최초 발굴

춘천 의병아리랑과 강원의 소리를 알리는데 평생을 바치고 있는 이유라 선생을 만나기 위해 원창고개 마루턱을 찾았다. 선생은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 재충전을 위해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서울이 고향인 이유라 명창이 춘천에 오게 된 연유를 물었다. 1991년 ‘강원도 국악협회장’이 안비치 명창에게 강원도에서 국악을 가르쳐줄 선생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해 스승인 안비치 선생의 권유로 춘천을 오게 됐다고 한다.

사진: 김남덕 시민기자)

원창고개 인근에 1천평의 땅을 마련해 서울집을 팔고 대출을 받아 현재의 ‘춘천국악원’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강원도 사람들에게 국악을 가르치기 위해 전 재산을 들였다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선생은 명창이란 호칭에 손사래를 쳤다. 명창 소리를 듣는 게 부담스럽다며 겸손해 한다. 적어도 명창이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50여년 이상은 국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은 경기민요를 전공했는데, 강원도에 오니 강원도 민요를 하게 됐다. 경기민요와 강원민요의 차이를 물었다. 두 민요는 음률에서 차이가 있는데, 강원도 소리는 한이 있다고 한다. 강원도는 지형적 특성에서 나타나는 산골의 애환과 생활이 소리에 녹아 있으니 애절하고 한이 맺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다. 그 애환이 소리로 녹아들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2001년에 ‘춘천의병아리랑’을 발굴하다

강원의 소리를 시작하며 강원도의 특징적 소리를 찾다가 강원민요라는 음반을 접하게 됐고 춘천 MBC에서 만든 음반에서 ‘춘천아라리’라는 새로운 소리를 발견했다. 당시 아리랑을 연구하던 고 박민일 교수를 찾아갔더니 그게 의병아리랑이라고 해서 그 노래에 ‘춘천의병아리랑’이란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누군가에 의해 전승돼 온 ‘춘천아라리’가 아리랑을 연구해온 고 박민일 선생이 문헌으로 정리하던 그 의병아리랑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연유로 2001년 ‘춘천의병아리랑’이 처음 세상에 나오게 됐다.

실제로 ‘춘천의병아리랑’ 가사는 2015년 4월 춘천역사문화연구회의 시민강좌에서 정미의병 당시 의병이 기록한 가사가 공개돼 역사적 사실로서 확인됐다. 이유라 선생은 “춘천의병아리랑은 애달픈 곡조를 띄고 있는데 의병들이 일본과의 전투를 앞둔 심정을 담고 있어서 곡조와 가사가 애달프다”고 말한다.

“춘천아 봉의산아 나 떠나간다 (중략) 우리네 부모가 날 낳을 적에 성 대장 줄려고 날 낳았던가”(성대장은 1907년 정미의병때 관동창의대장(關東倡義大將)이었던 성익현을 말한다-기자)

이유라 선생은 ‘잃어버린 강원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공연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호평을 받았던 전라도·경상도·강원도 아리랑을 합친 ‘국민대통합 아리랑’을 올해도 계획 중이다. 이 외에도 찾아가는 공연으로 농산어촌 순회공연을 전국을 순회하며 10회 이상 개최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춘천국악원’에는 30여명의 문하생이 있으며 일반인 수강생 20여명이 있다. 지난해 남원춘향제에서 학생부 대상과 일반부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선생의 애제자이자 국악협회 춘천지부장을 맡고 있는 김금옥 씨가 ‘전국경서도 민요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이유라 선생은 국악은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가진 이들이 많은 현실을 아쉬워했다. “실제로 공연장에 한번 와 보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며 “남의 것을 찾기 전에 우선 내 것 부터 아끼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오동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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