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쯤에 노부부가 내 진료실을 찾아오신 적이 있다. 서울에 살다가 아내가 폐암에 걸려서 서울 집을 팔고 공기 좋은 춘천으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아내는 물론이고 본인도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는데 왜 폐암에 걸렸는지 알 수 없다며 의아해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라돈에 대한 얘기를 꺼내며 이사하신 곳에서 라돈을 꼭 한번은 측정을 해보시라 권했다. 그 분이 이사 오셨다는 곳이 그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였고, 내가 측정해본 그 아파트의 라돈 수치가 결코 낮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작년 봄, 나도 그 아파트를 떠났다. 이사를 한 후 맨 먼저 한 것은 집 안의 라돈을 측정해보는 것이었다. 한 달 가까이 측정해보니 1pci/L 이하로 측정이 됐다. 정상이었다.
라돈은 폐암을 유발하는 둘째 원인으로 밝혀진 방사능 물질이다. 첫째는 당연히 흡연이다. 비흡연자가 폐암에 걸렸을 때 가장 먼저 의심되는 것이 라돈 노출이다. 라돈은 화강암 성분의 토양에서 주로 배출된다. 강원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토질 자체에 화강암이 많이 섞여 있어서 전국에서도 라돈 수치가 가장 높은 지역 중의 하나이다.

2011년에 생활환경정보센터에서 공개한 전국 실내 라돈지도를 보면 강원도 지역은 전체가 다 갈색으로 색칠돼 있다. 갈색은 평균 라돈 농도가 4pci/L 이상 검출된 지역을 의미한다. 이런 지역에서 사는 흡연자의 폐암 발생률은 1천명 당 62명이고 비흡연자의 경우 1천명 당 7명이다. 대한민국 평균 성인의 폐암 발생률이 10만명 당 45명인 걸 고려해보면 강원도에 살면서 담배까지 피우는 사람이라면 지옥문이 반쯤은 열려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지난봄에 측정된 수치를 보고 우리 집 지옥문은 닫혔다고 안심하면서 겨울을 지내다 문득 겨울에 한 번 더 측정해보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겨울철에는 환기를 시키지 않으니 조금 더 높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수치가 4pci/L를 넘었다. 깜짝 놀라 그날부터 당장 수시로 환기를 시켰다. 다행히 한 달 가까이 환기를 시키니 수치가 2-3pci/L로 떨어지긴 했지만 봄철에 확인한 걸로 안심한 채 살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하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서 특히 담배를 피우는 가족이 있다면 살고 있는 집의 라돈을 반드시 측정해보길 권한다. 봄이나 여름철에 측정해본 분이라면 반드시 겨울철에 다시 한 번 측정해보시는 게 좋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폐암을 유발하는 집에서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내 진료실을 찾아왔던 노부부는 라돈 측정을 해보았을까? 알 수 없다. 노인들에게 집을 옮기는 것은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과 같다. 항암치료를 받고 재발 방지를 위해 거주지까지 옮겨오는 심정은 어땠을까? 행복의 얼굴은 다들 다르지만 불행의 얼굴은 모두 비슷하다. 사랑하는 가족이 암에 걸리는 것이 어떤 일인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그 큰 불행을 막기 위한 작은 행동, 실내 라돈 측정은 바로 그런 것이다. (참고로 춘천에는 [춘천방사능생활감시단]이라는 시민모임이 있어서 라돈 측정기를 보유하고 있고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대여도 한다. 궁금한 분들은 이 단체에 연락을 해봐도 좋겠다.

연락처 010-3783-7736

양창모 시민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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