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도청 앞에서 세계평화와 설악산 보존을 기원하며 100배 절을 올리고 침묵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녹색연합 대표이신 박그림 선생님 일행과 우리 일행은 해맞이를 하러 봉의산에 올랐다. 그러나 짙은 안개로 춘천시내가 보이지 않았다. 이때 떠오른 단어가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해가 저 멀리 떠있을 텐데 안개가 덮쳐 시야가 좁아져 버린 것이다. 우리 강원도와 춘천이 그런 형세다. 올 2016년 정초를 뒤덮은 안개가 걷히고 밝은 해가 숨겨진 모든 것을 밝혀주길 기도하며 내려왔다.

가끔 택시를 탈 때가 있는데 잠시 동안이지만 택시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때마다 춘천에 아파트가 계속 들어서는 게 좋은지 물어본다. 희한한 일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기사들은 아파트를 계속 늘리는 것에 반대한다. 실거주자들이 살기에는 비싸고(투기꾼들만 배불린다는 말이 꼭 따라붙는다), 지금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와 집값이 떨어지며, 사람 사는 맛이 나지 않는다는(아파트 내 관계 단절) 등의 이유를 든다. 현지 거주민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를 계속 건설하는 이유는 지역개발에 따른 인구유입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춘천사람들> 12월 2일자 신문 사설을 보면 “춘천의 인구는 오랫동안 거의 제자리걸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둔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27일 춘천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0월말 현재 1천526명이 증가해 지난해 증가인원을 이미 넘어섰다고 했지만, 2010년 5천225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지난해까지 4년간은 평균 1천500명 수준의 증가세를 유지했다”고 한다. 도시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춘천만의 고유한 사업은 여전히 외부에 의존한 인구유입과 관광객이 전부란 말인가?

재개발 지역에 있는 노인들은 걱정이 많다. 한 노인은 보증금 5백만 원짜리 방에 사는데 재개발하면 일단 현재와 같은 집을 구하기 어렵고 월세 부담 때문에 지금보다 열악한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된다. 게다가 수십 년 동안 이어온 관계망이 하루아침에 단절돼 버리기 때문에 고독감은 더욱 심해진다. 이것은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렴한 주거비용으로 살아온 많은 가정들이 위기에 놓여있다. 이처럼 지역주민들의 욕구와 동떨어진 개발들은 외형상으론 괜찮아 보일지 모르지만 도시가 활력을 잃게 만든다.


한편 춘천을 찾는 새로운 사람들이 갖는 기대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춘천이 서울을 닮아가는 것에 실망한다고 한다. 그들은 자연과 사람이 함께 조화를 이룬 곳, 높은 아파트와 빌딩이 없는 곳에 살기 위해 찾아왔다고 한다. 곧 자연이 살아있는 곳이 사람 살기 좋은 곳이라는 말이다. 춘천 사람도, 춘천을 찾아오는 사람도 모두 개발을 원치 않는데 누가 지역개발을 갈망하는가! 오리무중 춘천에 <춘천사람들>이 한 줄기 빛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박순진 신부 (성공회 춘천나눔의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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