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응답하라’ 시리즈의 인기가 대단하다. 80년대 노래가 넘쳐나고 교과서 국정화 선언에 공안정국까지, 정말로 80년대로 돌아간 듯 착각할 지경이다. 짜장면 값, 목욕비, 버스비. 자연스럽게 그 시절과 지금의 생활물가를 비교하는데 농산물을 대표하는 쌀도 있다. 1988년 쌀값은 20kg 기준으로 4만 2천원.

작년 가을 박근혜 정부는 ‘창조’와 ‘선진화’를 들먹이며 80년대 이래 추진된 개방화 농정에 마지막 점을 찍었다. 농민들에게는 아무 걱정 말라며 쌀 관세화 개방을 선언한 지 1년이 지났다. 작년에 이어 쌀값은 더 떨어졌고 지금은 산지 쌀값이 13만 8천원(80kg)이다. 20kg에 3만 5천원이 채 되지 않는다. 소비자 가격과 생산지 가격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30년 사이 서울 강남 은마아파트 가격이 23배 뛸 때 쌀값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농업 생산기술의 발전과 생산량 증가는 고스란히 생산비 증가와 가격하락으로 나타났다. 농가 소득은 가구당 평균 3천5백만원 정도로 조금씩이나마 늘고 있지만(그나마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실질소득은 감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형편없다. 농가소득은 농업소득, 농외소득, 이전소득으로 나뉘는데, 생산한 농산물을 내다 팔아 번 농업소득의 비중이 1/3이 되지 않고 그나마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대신 다른 일을 해서 버는 소득이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농사로 생활이 안 되니까 농민들이 다른 일거리를 찾아 농촌에서 떠밀려 나가는 게 통계에 그대로 나타난다.

2012년 세계적인 기상이변과 흉년으로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했다. 우리나라도 2년 연속 흉년으로 쌀이 부족해 수입쌀까지 식용으로 돌리고 전략 비축미까지 손을 대는 사태가 벌어졌다. 식량에 관한 한 비상사태 직전까지 갔다는 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농업이 고비용 저효율이어서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지만,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러워하는 유럽국가들 중에는 식량자급률이 100%를 넘나드는 나라들이 많다. 기후나 토질의 영향도 있지만 농업의 중요성에 대한 전 국민적인 인식과 정책적인 보호에 힘입은 바가 크다. IMF 경제위기 극복의 가장 큰 버팀목이 농업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쌀이 남아돈다고 한다. 농민들은 벼를 투매하고, 쌀값 다 떨어지고 나서야 정부는 뒤늦게 20만톤을 시장에서 격리한다고 법석을 떨었다. 그리고 2015년 12월이 다 가기 전에 수입 밥쌀 4만3천톤을 또 수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쌀을 사료로 쓰겠다, 논에 다른 작목을 심으면 지원하겠다며 쌀 수급대책을 발표했다. 5년 전 쌀이 모자라기 직전과 똑같은 상황이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농정. 이게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현주소다.
병신년 올해 우리 농민들은 논과 밭에 무얼 심어야할지, 또 다시 이리저리 휩쓸려 다녀야 할 모양이다.

이예열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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