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연극인 5인방, 옹고집전으로 돌아오다.

춘천 ‘아트3 씨어터’. 작은 극장 문이 열리고 하나 둘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 희끗한 머리카락, 굽은 어깨, 어린아이 같은 웃음. 그렇지만 당당한 카리스마. 강원 연극의 역사이며 강원 연극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춘천의 김경태·김원림·박완서와 원주의 김학철, 그리고 속초의 장규호 5인의 원로 연극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춘천 1세대 연극인 박완서

17년 만에 연기자로 돌아온 무대가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연출을 전공한 그는 1969년 춘천에서 연극을 시작했다. 강원대에 영그리를 만들고 연출을 통해 배우들을 만들어내고 춘천국제연극제를 세웠다. 어느덧 75세.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득할 것 같지만 모두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항상 좋기만 한 무대에 서서 다시 연기를 한다는 것이 감개무량하다.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배역에 녹아들며 사실 인생공부를 했던 것이다.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46년 동안 30개 이상의 작품을 연출했던 그는 마지막 작품을 준비 중이다. 5단계로 나누어 진행 중인 기획은 2단계 쯤 와있다. 80세쯤 큰 무대로 연극인생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그였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안식처 무대.
한국연극협회속초지부 1대 지부장 장규호

배우의 삶을 계속 원했던 그가 무대 아래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연출자가 없는 속초의 사정 때문이었다. 다시 돌아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더 애착을 가졌던 무대. 30여년 만에 서는 무대인데 오랜만에 보는 원로들이 함께 선다니 기쁜 마음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대에 섰을 때 가장 편한데 어떻게 무대를 떠날 수 있을까. 무대에 서는 사람들만의 감정이 있다고 말하는 상기된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비록 연습을 많이 하지 못했지만 우리에겐 이심전심이라는 것이 있다며 우정을 과시하기도 한다. 배우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며, 다음 공연은 손자들을 초대해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다정한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연극은 내 인생의 디딤돌. 원주 김학

60년 연극배우로 데뷔해 늘 주인공만 맡았는데, 이제는 대사 외우는 것이 가장 힘들어 대본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외운다며 그는 멋쩍게 웃는다. 마음은 옛날과 같은데 기운이 떨어져 작은 배역을 맡았다고 한다. 이번 옹고집전에서는 박가와 취조관으로 1인 2역을 맡아 성격이 다른 두 인물을 보여준다. “연극이 인생이지 뭐. 생각해보면 나 살아온 자체도 연극인거 같아”, “내년이 극단 산야 50주년이 되는 해야. 여섯이서 함께 만들어 끝까지 연극하자 했는데 다 죽고 나만 남았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무대에 남아 구심점 역할을 해야지. 나이 든 사람이 해야 할 일이 그런 거지”라고 말하는 그. 연극은 인간 대 인간의 예술이라며 그래서 어렵지만 또 그것이 연극이 매력이라며 예술을 하는데 인간적으로 나태해지지 말자고 후배들에게 당부한다.

나는 오로지 배우로 살았다.
아트3 씨어터 대표 김경태

나는 그냥 예술에 충실하고 싶다. 단호한 그에게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행위자들은 작품으로 말하는 것뿐이다. 연기를 하는 사람이 가끔 매개체가 부족해서 제대로 된 연극을 하지 못하고 연극운동을 하고 문화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마음이 아프다는 그는 기획과 연기가 나뉘어져 순수 예술인들이 보호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전한다. 그동안 선후배의 연결 끈이 돈독하지 못했다며 이제라도 원로선배들의 건재한 모습을 통해 후배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계기로 삼고 싶어 옹고집전을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오랜만에 모여 함께 연기를 하고 있지만 다들 베테랑이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다고 한다. 오히려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열심히 하기 때문에 더 재미있고 즐겁다며 연습풍경을 전했다. 오직 배우로 무대를 지키고 싶다는 김경태. 앞으로 춘천만의 레퍼토리를 만들어 어느 장소에 올려도 춘천을 떠올릴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고 싶다고 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 김원림

20~30대에 함께 활동했던 이들과의 무대는 새롭고 재미있기만 하다는 마지막 원로 배우 김원림. 대사도 많지 않고 비중이 큰 것도 아니라면서 그저 즐겁게 연기할 뿐이라고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30~40년을 어울린 분들이 무대에서 만났기 때문에 항상 반갑다고 말한다. 나야 뭐 그냥 이 모습 그대로야. 명함 같은 건 만든 지도 한참 됐어. 내 나이쯤 되면 말이야,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거든. 이미 다 아는 사람인 걸. 무대에서 떠난 지 오래. 조심스레 근황을 물으니 “나는 후평동에서 농사짓는 할아버지지 뭘”하고 대답하는 그가 유쾌하다.
 

20대가 맡은 노인역이 아닌 실제 노년을 살아가는 배우들의 노인 역할은 삶의 깊이를 표현함에 있어 그 무게감이 다를 것이라고 설명하는 그들. 노년의 고집스러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연극 “옹고집전”을 연기하는 다섯 원로배우들. 반세기 가깝게 무대를 지켜온 그들의 식지 않는 고집스러운 연극 열정이 옹고집보다 덜하지는 않으리라.

 

 

글 김애경 기자/사진 김남덕 사진기자

 

 

[편집자 주] 이번 주 ‘작가의 작업실’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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