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아이의 기말고사 기간이다. 집안은 아이의 그날 시험 결과에 따라 희비가 교차된다. 언제부터였을까? 성적에 일희일비하는 학부모의 대열에서 나도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며칠 전 이번 겨울방학에는 수학학원을 알아봐야하지 않느냐는 아내의 걱정스런 물음에 머리를 끄덕였다. 강을 따라 걸으면서 기말고사가 불현 듯 떠오르더니, 상상의 나래가 폭풍우 친다. 시험을 잘 보면 뭐하나? 수능을 잘 봐야지.

수능 잘 봐서 대학교 가면 뭐 하나? 취직도 안 된다는데, 왜 이렇게 난리법석을 떠는가? 도무지 정리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맹목적인 레이스에서 빠져나올 엄두가 나질 않는다.
정신을 차리니 술원이고개 입구를 지나는 중이다. 비포장도로는 끝나고 아스파트길이다. 신발에 흙이 묻지 않는 대신에 다리는 더 뻐근해진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 거친 산속 길은 불편하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다. 매끈한 포장도로를 걷자마자 달리는 차에 가슴 졸이고, 바로 충격이 전달되는 다리에 신경이 쓰인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쓴 편지가 떠오른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하여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 아니겠느냐?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 뿐만 아니라, 호사스런 집안 자제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촌구석 수재들이 그 심오함을 넘겨다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으로 말한다면 수능시험 자체를 볼 수 없는 상황을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아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주문한다. 조상이 큰 죄를 지어서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는 폐족(廢族)이 된 상황에서 공부라니! 아버지의 요구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아버지의 말을 따르는 아들도 아버지답다. 아들이 받아들이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과연 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나의 교육관은 자식의 출세라는 테두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산 선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꼴이라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방하리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기나 긴 유배에서 돌아온 정약용은 평정을 찾았는지 방하리에서 담담하게 시를 짓는다.

남이섬 아래 위치해 있는 방아골을 / 南怡苫下方阿兀
한문으로 번역하여 구곡이라 하는데 / 譯以文之臼谷云
아, 온조왕이 이곳에서 회군을 하였어라 / 溫祚回軍噫此地
큰 눈이 하늘 가득 성대히 내렸었지 / 一天大雪想紛紛


≪삼국사기≫ 온조왕 18년 11월에 “왕이 낙랑의 우두산성(牛頭山城)을 습격하려고 구곡(臼谷)까지 왔다가 큰 눈이 내리자 바로 돌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구곡에 관하여 다산 선생은 남이섬 아래 방아올(方阿兀)을 한문으로 번역하면 구곡(臼谷)이 된다면서, 그 곳이 백제군이 회군한 지역이라고 고증했다. 지금의 춘천시 남면 방하리(芳荷里)다. 구곡폭포가 있는 마을 일대를 ‘구곡’·‘구구리’ 등으로 부르고, 구곡폭포 위에는 절구의 확처럼 생긴 마을이 있다는 점을 들어 구곡폭포 일대를 가리킨다는 주장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역사서의 한 구절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지금 이곳이 온조왕이 회군을 결정한 그곳일 가능성이 높지만, 오늘은 어느 입장에 동조하는 것보다 그때처럼 눈이 성대하게 내리길 바랄뿐이다. 그러면 옹졸한 나의 심사와 답답한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잠시나마.

권혁진 (강원한문고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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