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체계가 세계 제일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을 본다. 전 국민이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누구라도 쉽게 병원이나 약국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의료당국은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의료분야가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다고 홍보한다. 우리처럼 국가가 보험을 운영하는 것이 미국처럼 민간에서 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까지 한다. 복지라는 차원에서 보면 의료보험은 일정 부분 훌륭한 제도다.

그러나 보건당국의 존재목적이 국민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라는 면에서 보면, 병든 이후 치료를 하는 것에 치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병든 후에 열심을 내는 것보다 국민을 병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병들지 않는 건강한 사회구조를 만들어 건강한 국민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병든 이후 치료를 위해 드는 비용보다 예방을 위해 드는 비용이 훨씬 적다. 따라서 의료보험의 범주를 넓히는 것만큼이나 예방의학에 치중해야 한다. 그나마 의료보험이 사전에 건강 검진을 실시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욱 예방의학에 치중해야 하고 특히 의료정책적인 면에서 예방 프로그램을 더욱 확산시켜야 한다.

열악한 사회복지 구조를 지닌 남미의 경우, 보험으로 인한 각종 부조리가 엄청나게 발생하고 있다. 더 이상 수입이 없는 가난한 이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의 몸을 상해하거나 교통사고를 거짓으로 꾸며 보험금을 타내려 한다. 이런 일들은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 영화《까란초, Carancho》(2010)는 불합리한 의료보험 체계와 그 틈을 이용하여 먹고 사는 중간 브로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현대에 들어 법은 더욱 복잡하고 세밀해졌다. 매년 수십 개의 법이 국회를 통해 새로 생겨나 법전을 두껍게 장식해준다. 반면에 실제로 적용되지 않고 사장되는 법도 여럿 있다. 이젠 인터넷 검색도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해당 법령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판례까지 검토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 빈틈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이들이 법률전문가들이다. 면허라는 확실한 울타리로 보호받는 이들은 법에 약한 이들로부터 사건을 의뢰받아 그 비용을 받으면서 먹고 산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기관은 최고의 정보기관이 되었다. 의료보험 수가를 결정하기 위해 직장인은 물론 지역가입자의 현재 보유 재산액과 재산 변동 상황, 직장 입퇴사와 의료혜택 이력을 정확하게 갖고 있다. 각종 증명서 제출과 경력 검증 시스템 가동 시에 의료보험 가입과 납부 상황을 가장 신뢰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존재 목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까란초’란 아르헨티나에서 독수리를 의미한다. 남의 죽음으로 생을 연장한다는 점에서 독수리를 닮았기에 의료법률 전문 브로커를 까란초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생사의 문제에 직면하면 금액의 크고 작음에 매달리지 않는다. 얼마의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일단 치료부터 하려고 한다. 이런 약한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먹고 사는 이들이 까란초다. 하여 우리의 의료보험 기관이 허가받은 까란초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정배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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