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페이스북을 보다가 친구 목록을 통해 E를 보았다. 키는 작지만 이목구비가 아주 잘 생긴 아이였는데, 3년이 흘러 벌써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나이가 되어 있었다.
강사를 시작하기 전,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 다짐을 잘 지키고 있냐고 하면, 글쎄다. 사실 폭력은 행하는 사람보다 당하는 사람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니 스스로 답하기는 무안한 일이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학원생활 중 내 신념과 각오와 달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생을 때린 적이 있다. 그 아이가 바로 E였다.
당시 중3이던 E는 수업 중에 졸거나 딴청 피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다른 강사들조차 가르치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학습상태가 엉망이었다. 재밌는 강사와 말장난 주고받고,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는 것만을 마냥 좋아하던 아이였다.

E에게선 자신의 삶은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의 냄새가 났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갈 것이 분명하고, 대학을 못 갈 것이 분명하니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는 운명. 운명이 그러하니 공식을 외울 필요도, 과제를 해올 이유도 없었다. 그냥 45분 시간만 때우면 되는 거였다. 학원은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벗어나는 피난처 정도였을 것이다.

어르고 달래도 E는 공식조차 외우질 않아 다른 아이들과 수업을 도저히 같이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매를 들어서라도 고쳐 보겠단 마음을 먹었다.

주말에 추가 보충해가며 공부하지 않으면 노는 시간까지 줄어들 수 있음을 깨닫게 하려 노력했다. 당연히 E는 변하지 않았다. 귀찮게 하는 사람으로 나를 여길 뿐.
E는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조부모님과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더욱이 아버지가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E도 자주 보질 못한다 했다. E는 그러니까 집에서조차 무관심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다. E에게 맡았던 그 운명론의 냄새는 아마 집과 학교, 학원이 준 무관심이 쌓여서 생긴 것이었으리라.

고민 끝에 E의 아버지를 직접 만났다. 조심스레 E의 상태를 말하고 현 성적으론 인문계 진학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예상대로 아버지는 E의 상태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다. 나는 추천서까지 써 드리겠다고 약속하며 대안학교 진학을 권유했다. 하지만 일반 고등학교가 아닌, 잘 알지도 못하는 대안학교 입학을 쉽게 결정하지 못했고, 결국 E의 아버지는 아이가 그냥 춘천에 남기를 원한다며 내 제안을 거절했다.

E는 춘천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그리고 올 2월에 졸업을 한다. 아마 E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혹여 기억을 한다고 해도 무지 괴롭히던 사람쯤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주변의 아이들을 조금만이라도 돌아봐 주시길 부탁드려 본다. 우리가 만든 이 괴물 같은 세상이 무관심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E와 같은 친구들을 또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강종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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