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시계!
육체의 언어는 진솔하고, 배꼽시계는 정확하다. 채집과 수렵이 생존의 수단이었던 인류가 처음부터 하루에 세 끼를 먹도록 설계된 것은 아니다. 하루 세 끼의 습관은 불과 1만 년 전부터인데, 그것도 고대 4대 문명발생지에 살았던 극히 일부의 인류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동물의 식욕은 생존을 위한 것이지만, 현대 도시인의 식욕은 욕망의 충족일 뿐이다. 그런데도 하루 세 끼의 식습관을 마치 꼭 그래야 하는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한국슬로푸드협회와 춘천생협이 지난 해 10월 공동 주최한 ‘춘천 슬로푸드 입문과정’의 수강 모습

시간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인간사회의 시간으로, 시계가 만들어내는 인공의 시간이며 현재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경제의 시간’이다. 이러한 경제 중심의 시간은 ‘가속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자연의 시간’이다. 지구 탄생에서부터 인간이 느끼기조차 힘든 시간을 지나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하는 단계를 거쳐 인류가 탄생하기까지의 모든 시간을 뜻한다. 산에는 산의 시간이, 바다에는 바다의 시간이 있으며, 물에는 물의 시간이 있고, 생명체마다 그들만의 시간이 있다.

인간사회는 최근 1~2세기 동안 엄청나게 속도를 내왔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빠른 사람들이 촉망받는 사회가 되었다. ‘세계화’라는 말은 ‘점점 더 속도를 내는 시간’을 멈추지 않고 그것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허물어 나가자는 움직임이 아닐까 싶다. 지구 전체가 ‘빠른 사람이 이긴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효율성과 속도, 그리고 양을 경쟁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계에, 그리고 지구에 속도를 강요하고 있다. 음식에도 이러한 시간과 경제논리가 작용해 패스트푸드와 거대 식품산업이 등장하게 되었고 결국 우리의 먹을거리에 심각한 우려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요리’라는 말도 먹는 준비를 위한 번거로운 노동을 기술적으로 대체하는 말과 다름없게 됐다.

지구별은 본래 그것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경제시간의 빠르기를 따라잡지 못하고, 급속한 환경변화 속에서 적응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절멸해 가고 있다. 땅이 망가지고, 농부가 사라지고, 토종이 점점 멸종되고, GMO 식품이 밥상을 차지하고, 식량자급률이 낮아지고, 농업이 붕괴되기 일보 직전이고, 음식공동체가 무너지고, 가정에서 조리하는 모습마저 점차 사라지고, 속도에 맞춘 편리와 입맛을 사로잡는 MSG에 빠져들고 있다.

지금처럼은 안 된다는 자각에서 시작된 것이 슬로우푸드 운동이다. 특별한 조리법과 음식이 아니라 배꼽시계처럼 몸과 자연의 시간이 울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자는 운동이다. 대부분이 음식문맹자인 현실에서 슬로우푸드 운동에 대한 사명감으로 시작된 춘천 슬로우푸드 입문과정은 그래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자연과 사람에게 좋고 건강한, 그리고 사회에 공정한 먹을거리. 그 희망을 알리는 첫 울림이 될 것이다.

 

채성희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