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먹으러 가자!”하고 그대로 뛰쳐나갔다. 신나게 먹고 “나 지갑 두고 왔어. 계산 좀 해!” “저 지갑 안 갖고 왔는데요. 헐!” “그럼 자넨?” “저도. 헐!” ㅠㅠ. 내가 해결했다. “사장님! 저 두산그룹 회장인데요. 지갑을 아무도… 죄송함다.”

음식집 계산대 앞이다. 속도감 있는 문장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킨다. 이 단문은 몇 년 전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이 올린 트윗글이다. 한음절 압축과 생략이 전형적인 sns용 문체다. 재벌총수의 가식 없는 모습은 신선했고, 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소통의 달인으로 떠올랐다. ‘권력위의 권력’으로 군림하며 불법전횡을 일삼던 재벌의 이미지에서 그 자신과 두산그룹을 달리 보게 만들었다. 마케팅 전략도 뛰어났다. ‘사람이 미래다!’ 이 광고카피는 두산그룹을 주류회사 이미지에서 스마트한 글로벌기업으로 바꾸었다. 상공회의소 회장이기도 한 그는 ‘부자증세’나 ‘사내유보금 과세’ 등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개혁 이미지를 과시하기도 했다. 두산그룹은 대학생들로부터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입사하고 싶은 기업으로 떠올랐다.

너무 잘 나간 탓일까. 두산그룹에 그동안 쌓은 이미지를 까먹는 일이 벌어졌다. 두산인프라코어에서 막가파식 인력감축을 저지르다 사단을 낸 것이다. 언론보도를 보면, 이 회사는 올해 직원 4천8백여 명 가운데 중간간부 이상만 8백여 명(17%)을 희망퇴직으로 퇴출시켰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당사자들에게는 ‘절망퇴직’이었다.

이 회사는 그러고도 모자라 희망퇴직을 거부한 직원들에게 보복을 했다. 대기발령을 내고 모멸적인 업무를 시켰다. 여론에 밀려 번복했지만, 20대 1~2년짜리 신입사원들에게까지 희망퇴직 고문을 했다.

이 정도면 대기업 입사와 함께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심지어 임신했거나 출산휴가를 앞둔 여직원, 사내커플 여성 직원에게 퇴직을 강요했다. 심각한 양성평등 위반이자 지질한 노동탄압이다.

희망퇴직을 피해보려는 노력도 없었다. 영업손실과 글로벌 경기위축에 대비한 것이라지만, 겨우 한 일이 직원 자르는 일이었다. 회사가 어려움에 직면했다면 직원 동의를 전제로 고용승계를 확고히 한 뒤 알짜 사업부문을 매각하거나 조직을 통폐합하는 회피노력을 먼저 해야 했다. 더욱이 두산그룹은 약 9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 놓고 있지 않은가.

두산과 박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사람이 미래라면서도 엊그제 뽑은 청년들까지 싹을 자르려는 두 얼굴을 보여줬다. 지금 정부는 노동자들을 더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법을 ‘노동개혁’으로 치장해 통과시키라고 연일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저렇게 쉽게 노동자를 퇴출시키는데 더 이상 무슨 법이 필요하단 말인가. 재벌개혁이 먼저다.

고광헌 (시인, 한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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