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이나 동식물에만 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도 영이 있다고 믿는다. 지역마다 다른 경관과 기후, 생태계를 갖고 있을 뿐더러 지역마다 문화유산과 정체성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춘천은 한국에 남은 몇 안 되는 영혼 있는 도시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며 <춘천사람들>이 춘천의 혼을 일깨우고 고유의 정체성을 세우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요즘 전국 어디를 가도 조립식 패널로 만든 집이나 작업장들이 많다. 하늘에서 보면 전국이 파란색, 분홍색으로 똑같은 건물투성이다. 면 소재지마다 아파트 건설이 ‘멋진 생각’으로 여겨지고 있다. 도무지 ‘지역’을 알아볼 수가 없다. 지역 고유의 경관은 사라지고 지역의 건축도 없다. 농사도 마찬가지다. 전국 어디를 가도 벼는 5~6개의 품종에 불과하고 사과와 배의 품종은 거의 부사와 신고로 획일화되었다. 돼지와 닭, 소도 품종이 다양하지 않다. 기후와 토양의 조건에 따라 제각각 진화해서 지역에 적응했던 토종은 사라지고 어디를 가나 같은 농사다. 먹거리도 마찬가지다.

지역음식은 사라지고 국적 불명의 패스트푸드로 바뀌고 있다. 자극적인 조미료로 입맛이 획일화되어서 지역의 맛이 사라지고 있다.

일제는 전국의 명당자리에 쇠말뚝을 박아서 조선의 혼을 말살하려고 했다. 당시에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에 맞서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서 투쟁했고, 그 결과 광복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 광복 70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신과 영토는 어떠한가? 얼마 전 비행기를 타고 제주를 가는 동안에 대한민국 강토가 신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곳곳에 철탑과 아파트가 박힌 것이 일제의 쇠말뚝처럼 보였다. 전국이 유치한 색깔의 조립식 주택으로 울긋불긋한 것이 각각의 지역 정체성을 구별할 수가 없었다. 전 국민이 먹는 음식이 똑같고, 농사도 똑같고, 생각하는 수준도 똑같다. 과거에는 대한민국의 혼을 파괴하는 식민의 시대였다면 오늘날은 지역의 혼까지 파괴하는 개발의 시대다.

슬로푸드 운동은 1986년에 이태리의 작은 도시에서 지역의 먹거리 정체성 지키기 운동으로 시작돼 오늘날 전 세계 160개 나라 시민이 공감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우리 도시의 농사와 식탁을, 지역의 생태계와 문화전통 위에서 가꾸는 운동이다. 그러기 위해 슬로푸드 운동은 아래 3가지 일을 한다. 먼저 우리 지역의 생태계와 문화전통을 잘 아는 시민교육이 필요하다. 아는 만큼 가꾸고 먹게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우리 지역 음식을 먹는 운동이 필요하다. 우리가 먹는 지역음식이 지역을 만들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지역음식을 만드는 사람을 지원해야 한다. 농부와 요리사, 외식업 경영주들이 안심하고 지역 먹거리를 만들 수 있도록 세제혜택과 시민인증이 필요하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내 앞으로 오는지 알 수 있도록 <춘천사람들>에서 자세히 알려주기 바란다. 우리 지역에서 좋은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격려해주기 바란다.
우리 지역을 만든 주변의 생명들, 동식물과 미생물까지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도록 <춘천사람들>과 손잡고 슬로푸드 운동을 함께 하고 싶다.

 

<편집자 주> 슬로푸드 이야기가 이번호부터 매월 1회 연재됩니다.

김원일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사무총장)

 

키워드
#슬로푸드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