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문화행사가 풍성해지는 계절이다. 문화현장이 점차 각박해져가고 있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지만, 참신하고 기발한 기획으로 꾸려지는 전시회나 담백한 글 솜씨로 다듬어내는 문학동인지의 출간소식을 접하게 되면 마음이 훈훈해지곤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양적인 면에서 문화행사가 풍성해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지역자치단체에서 행하는 지역예술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0월에 춘천시가 교육부 인문도시지원사업에 선정돼 지역의 인문자산을 활용해 시민 삶의 문제를 극복하고 인간의 가치회복 및 지역정체성 확립을 위한 사업을 진행한다는 기사를 보고 반가웠다. 지역정체성 확립은 지역의 본래 모습을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다. 사라져가는 기록의 연구와 보존이야말로 정체성 확립의 기본일 것이다. 역사를 만들고 문화를 전승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기록문화이기 때문이다.

지역에 대한 연구와 출판은 많은 전문인력과 재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각종 지역연구에 대한 학술사업의 결과물을 책으로 만든 일이 내게는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일제시대 ≪강원도지≫를 번역한 ≪국역 강원도지≫와 1830년을 전후하여 편찬된 ≪관동지≫를 번역하고 역주한 ≪국역 관동지≫ 등 많은 책의 제작에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강원의 민요≫다. 당시 채록작업이 함께 이루어졌는데 그 과정에 참여했던 대다수의 어르신들은 지금 계시지 않을 것이다. 그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 강원도 구전민요의 대부분이 전승되지 않고 사라졌을 것이다.

해마다 연말이면 이와 같은 연구사업의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지금은 강원문화재단이나 춘천문화재단에서 각종 연구조사 및 출판사업에 대해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잔치일 뿐 시민들이 그 성과를 함께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정 장소를 통해 배포가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정작 그것을 필요로 하는 시민은 출간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

‘한 해에 한 번 이런 결과물들을 모아 시민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공간에서 책전시회를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수한 작품에 상이라도 주면 더 내실 있는 책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춘천의 이야기를 담은 한마당 ‘책 축제’라고 하면 더 좋겠다.

적은 출판비 지원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열심히 발품을 팔며 지역연구를 위해 뛰어다니는 연구자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런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일을 하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원미경 (산책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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