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를 만나든 기자의 손은 늘 떨리고 가슴은 오그라든다. 아직 많은 작가들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보아온 작가의 작업실은 기자가 생각하는 세상 보다는 훨씬 앞에 있다. 철학적 완성도, 삶의 지표, 어느 것 하나 기자가 엄두 내기 힘든 일이다. 길게는 반세기, 짧아도 십 수 년의 고뇌의 산물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을 테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춘천사람들> 창간준비호에 ‘그런시’ 라는 축하시를 써준 박제영 시인을 만나니 덜컥 겁이 났다. 쪼그라든 가슴은 이야기를 듣는 내내 억장을 짓누른다. 꼴에 기자라고 시인이 내민 《식구》라는 시집을 예리하게 읽어 보자는 오기가 생긴다. 시인이 건넨 시집을 펼쳐 채 세장도 넘기지 못하고 머릿속이 멍해진다.

시인은 춘천 박씨의 후손으로 춘천이 고향이지만 부모를 따라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춘천이 아닌 타지에서 보내다 10년 전 마흔이 돼서야 춘천으로 돌아왔다. 1992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은 《소통을 위한, 나와 당신의》라는 시집이었다. 그 후로 4권의 시집을 더 출간했다.

 

소통이 되지 않는 시는
의미가 없다


소통이 되지 않는 시는 의미가 없다는 시인은 요즘 시인들의 시가 관념적인 면이 중시되고 어렵다고 말한다. 대중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시란 것이 시인이 살아온 이야기가 기반이 되지 않으면 솔직한 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춘천이 가진 콘텐츠가 ‘물의 도시’, ‘예술의 도시’, ‘문화의 도시’라고 하지만, 그 콘텐츠를 이용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다며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그런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시집을 낼 때 반드시 한 편 이상의 시는 춘천과 관련된 시를 쓰겠다는 다짐을 했다. 네 번째 시집 《식구》에는 〈춘천〉, 〈안개의 기원〉 등 누가 들어도 춘천임을 알만한 시를 수록하고 있다.

시인은 30년간 시를 써오며 느낀 속내를 독자인 대중을 빌어 슬쩍 드러낸다. 시가 어려워지는 것은 시대적 경향이기는 하지만, 소통이 되는 시가 되려면 독자에게 쉬워야 한다. 순수문학이라는 장르로 포장된 시 세계의 경향이 어려워지는 데는 평론가들이 배운 것을 써먹어야 하는 배경도 있다고 한다.

‘춘천 시민의 반은 시인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 말이 비아냥스럽게 들리기도 하지만 그걸 이겨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시가 부끄럽지 않도록 치열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 속에 인고의 세월이 묻어있다.

“한 식구가 모여
한 세상을 이룬다”


정현우 작가는 박제영 시인의 《식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한다.

“박제영의 시들을 읽으며 몇 번이나 키득대고 웃었다. 물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시들이 더 많았다. 시집을 읽으며 울면 울었지 웃기는 쉽지 않다. 웃을 수 있었던 것은 해학이 있기 때문이다. 해학은 우리 전통문학이 가진 가장 큰 덕목이다. 박제영 시의 지평이 그만큼 넓어진 것이다. 박제영이 가족에 천착하는 이유는 뭘까? 시적 성취의 한 단계로 생각한 걸까? 아니면, 아니면 인간 존재의 근원을 확실하게 짚어보고 싶었던 걸까? 그도 아니면 그냥 건강하고 행복한 시를 쓰고 싶었던 걸까?”(박제영 《식구》, 정현우 작가 발문 중)  
이에 대한 시인의 대답은 이미 시 속에 있다.

“한 식구가 모여 한 세상을 이룬다.”(박제영 《식구》)

시인의 이야기처럼 춘천 문화예술계는 향후 백년을 위해 어느 부분에 특정되지 않고 화합하며 소통하는 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부러움 반, 질투 반으로 다가온 시인의 시 <거룩한 계보>, <아내>에 담긴 아내에 대한 애정, <거미가 작아 졌어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가위바위보>에서 전해지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 《식구》는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축복임에 틀림없다.

글 오동철 시민기자/ 사진 김남덕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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