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행사가 있어 떡케이크 잘하는 곳을 수소문하다가 “오감재”라는 곳을 알게 됐는데, 전통의 깊은 맛은 살리고 모양새는 현대화시켰다는 평판이었다. 현대화라는 명분으로 전통음식의 이름만 살리고 가치와 본질, 맛을 훼손한 기성품이 대량 유통되다 보니, 건강과 소망까지 담아내던 진정한 전통을 지켜내려는 시도들이 귀하게 다가온다. 옛것을 지키려는 보수적인 가치가 살아나는 흔적을 찾아 오감재의 박정화 명인을 만났다.

자연이 준 재료로 맛과 멋을 살리는 오감재(五感材) 전 대표 박정화 명인
허전함과 우울을 이기게 해준 전통음식의 감동

떡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신 건가요?

처음부터 전통 떡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아이들 모두 결혼하고 나니 마음이 좀 허전했어요. 그런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 우연히 TV에서 윤숙자 선생님의 전통음식에 대한 강의를 보았는데, 참 멋스럽고 고급스러웠어요. 너무 감동해 곧바로 윤숙자 선생님이 운영하는 한국전통음식연구소를 찾아 우리 음식과 떡을 제대로 접하게 되었죠. 그때부터 떡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서울까지 가서 음식을 배우는 것은 여러 면에서 쉽지 않았을 텐데요.

교통편도 지금처럼 좋은 때가 아니었으니 힘들었죠! 서울까지 왕복 6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야 했어요. 연구소에서 배우는 것 말고도 한과, 육포 만드는 법, 관혼상제 음식을 다루시는 분들도 찾아다니며 배우다 보니 집에 돌아오면 정말 기진맥진하기 일쑤였죠. 많이 힘들었지만, 남편이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해주고 지지해준 덕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배우는 것과 달리 매장을 연다는 것은 좀 다를 것 같은데요.

생각과 너무 달랐죠. 배운 이론을 상품화해서 음식으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만드는 양이 많다 보니 기계를 사용해야 하는데 기계 사용법을 몰라서 애를 먹었습니다. 주변에서는 기술자를 고용하지 그러느냐 했지만, 좋은 떡을 만들기 위해선 제가 직접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계 작동법도 배우고, 그 기계를 통해 제가 원하는 질감과 맛을 낼 방법을 터득해 가면서 떡을 개발하고, 상품화해 갔습니다.

음식에 담아야할 정신과 가치는 반드시 지켜져야

떡과 같은 전통 음식도 요즘 사람들 취향에 맞춰 많이 변하고 있지요?

퓨전 바람이 불면서 업계에서는 떡에 치즈나 크림을 넣기도 하더군요. 저는 이것이 우리 떡의 차별화를 더 망치는 것이라 생각해요. 특히 우리 떡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여러 선물을 한 곳에 담아 사람들에 전하는 보약 같은 음식이지요. 변화나 차별화도 중요하지만, 음식이 갖는 본질과 가치를 지키고 가꾸는 것이 우선돼야 해요. 기본이 바탕이 된 다음에야 변용이나 다양성도 있는 거라고 봅니다. 우리 음식에 대한 자부심, 주인 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

지금은 오감재를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네. 지금은 오감재를 운영하지 않고 있어요. 아침에 떡을 찾으러 오는 분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잠 못 자고 새벽에 작업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매장 운영 5년을 하면서 몸이 참 힘들기도 했고, 사람들에게 음식을 파는 것보다 우리 음식을 알리고 보급할 필요성을 절감했어요. 그래서 문화원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문화원에서는 어떤 일들을 구상하고 계신가요?

그동안 떡에만 집중했었는데, 이제 우리 고유 음식 전반에 대해 알리고 싶어 장과 궁중음식을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춘천에서 우리 음식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복합적인 문화원을 만들려고 해요.
 


어머니로부터 딸에게로 이어지는 정신

오감재를 할 때부터 따님과 같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제가 떡이나 제사 음식을 만들면 옆에서 거들고는 했어요. 어릴 때지만 소질이 있었어요. 전통 음식을 하다 보니, 누군가 제가 하는 일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도 생겨서 제 딸에게 전통음식을 더 전문적으로 배우라고 권유하고 있어요. 현재 숙명여대 식품영약학과 대학원을 진학해서 우리 음식의 조리법을 더 체계 있고 정량화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계획하시는 일들이 잘 돼서 춘천에서 전통의 깊은 맛을 배우고 체험하고, 또 이어나갈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전통이라고 하면 다들 고리타분해 하는데,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습니다. 본질을 잊지 않으면서도 후세대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 음식을 개발하는데 애쓰겠습니다.

‘먹방’의 소란스러움과 쉽게 맛을 내는 갖가지 인스턴트 재료들로 눈과 입이 길들여진 이 시대에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어쩌면 시대착오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랜 타지 생활 끝에 어머니의 손맛과 소박한 토속재료가 들어간 집 밥이 그리워지듯이 누군가는 끝내 우리의 맛과 전통의 품격을 지키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전통을 지키는 것이 번거롭고 고되지만, 이 시대와의 연결점을 찾아 고민하고 시도하는 박정화 명인이 춘천에 있어 반갑고 고맙다.

강종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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