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넘은 계절은 빠르게 겨울로 달려간다. 춘천분지를 둘러싼 높은 산엔 새치처럼 백발이 희끗희끗 하고 나무들은 앙상하게 가지를 드러냈다. 작가의 작업실은 높지 않은 산 아래 양지 바른 구릉에 자리하고 있었다. 집 주위로 몇 그루의 나무들이 높은 가지를 휘두르며 구름과 악수를 나눈다.

그려야 배운다. 그려야 산다. 작업실 가운데 그림 그리는 화구 한쪽 면을 장식한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서울대 미술대를 졸업하고 대만 유학을 한 서양화가 이광택 작가.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동면 장학리에 있는 작업실을 찾았다. 처음부터 치열한 고뇌가 느껴졌다.

어릴 적 꿈은 역사학자

이광택 작가의 고향은 지금은 사라진 의암호 아래 대바지강(대밭)이었다. 1967년 의암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중도를 걸어서 건널 수 있었기에 중도의 수많은 유적과 유물들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어릴 적 꿈은 고고학자나 역사학자였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누님이 12권짜리 세계미술인전집을 사주었다. 그때 반 고흐와 폴 고갱의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형님의 권유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미술반 활동을 시작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돌 무렵에 작가가 가장 좋아한 것이 그림책이었다. 장욱진 화백이 그림을 그리고 임석재 교수가 동시를 쓴 삽화집을 종이가 닳을 정도로 끼고 다녔던 일도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런 운명과 누님의 선물이 지금의 작가를 만들었다. 화가는 지금도 그 옛날 송암동 대바지강 주변의 목가적인 풍경을 잊을 수 없다. 강가에서 보던 중도의 농가풍경과 석양이 만든 노을은 작가가 그림을 그리게 된 또 다른 동기였다. 그는 지금의 공지천 주변 강가에 일렁이던 낚시꾼들의 카바이트 불빛과 중도 하늘에 별빛이 쏟아지는 강변풍경에 대한 옛 기억을 그리고 싶어 한다. 워낙 밤을 좋아하는 작가의 성품은 그때 만들어진 것이리라.
 

 

동양의 관점에서 서양화를 그리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가면서 작가는 우리 것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문인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서양의 시각이 아닌 동양적 관점에서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한다. 올해 작가는 의암 유인석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한국적인 것을 찾는다는 것이 꼭 옛것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라는 작가의 의지와 논리는 확고하다. 작가가 가져야할 덕목은 기법만이 아니다. 철학도 중요하다. 작가는 인문학적인 요소와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공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부부화가다. 작가의 부인은 민화를 그리며 강의도 나간다. 이 작가도 강원대 미대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작가의 치열한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화가도 지식인이다. 지식인으로서 고민도 깊다. 대구에서 전시회를 할 때 한 관객이 혹시 춘천에서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작가는 그림 속에 춘천의 모습이 있다는 그의 말에 놀랐다. 처음 보는 사람이 춘천이 가진 정체성을 알아볼 정도라면 춘천에는 분명 춘천만의 화풍이 있고 춘천만의 예술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역사와 인물을 계승하는 일에도 그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활동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작가에게 응원을 보낸다.

오동철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