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로 권력자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정하기 위해 쌀과 돈과 총을 사용한다. 먹을 것으로 기초적인 것을 해결해주는 대신 자신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라고 한다. 또한 돈으로 유혹하며 충성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줄 수도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자신을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잔혹한 보복이 따른다며 무력으로 생명을 위협한다.

영화 《다크 밸리, Das Finstere Tal, The Dark Valley》(2014)는 제18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출품작이다. 공간배경은 오스트리아의 폐쇄된 깊은 산골마을이고, 시간 배경은 19세기 후반 즈음이다. 이야기는 한 남자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유창하게 독일어를 구사하는 사진사인 미국인을 마을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의 행적은 조용하고 차분해서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차츰 그가 이 마을을 찾아온 목적이 무엇인지 그의 행동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한다.

《다크 밸리》 포스터

권력자는 먹을 것이 없어 마을을 찾아드는 이들에게 불의한 계약을 맺게 한다. 기가 막힐 조건을 내세우지만 굶주림에 지쳐 있던 이들은 저항할 힘도 없어 권력자의 명령을 그대로 따른다. 나날이 불안하고 힘겨운 삶이지만 돈의 달콤함에 젖어가고 보복의 두려움에 적응하며 겨우 살아간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감시하며 비겁하게 살아간다.

권력자는 자기가 구상한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이것이 새로운 변화나 낯선 인물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다. 체제유지를 위해 가해지는 일정한 폭력 행사는 정당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누구보다 더욱 악한 이는 권력자를 비호하는 자들이다. 신의 이름으로 권력자의 시스템 유지에 절대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종교인은 악의 극치를 보여준다.

종교인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용서’와 ‘관용’이다. 악한 이들이 저지른 일에 대하여 순순히 수용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호도한다. 언제나 그렇듯 권력에 빌붙어 먹고 사는 이들의 논리는 권력자의 폭력을 옹호해주는 쪽으로 기운다. 일련의 상황을 개개인에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또 다른 악한 이는 돈을 얻기 위해 영혼을 파는 자들이다. 놀라운 것은 돈을 가장 많이 매만지는 자들이 돈에 더욱 집착한다는 사실이다. 마을을 탈출하기 위해 겨우 숨어든 사람들을 돈 때문에 팔아버리는 여관주인 태도는 권력에 빌붙어 사는 기업가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행태다.

나치정권에 대해 대다수 독일의 지식인과 종교인은 침묵했다. 몇몇 사람만이 히틀러에 대항하다 처참하게 제거 당했다. 비판세력이 사라지면서 히틀러의 광기는 극에 달한다. 정권을 비호하는 이들에게만 둘러싸인 권력자는 판단능력을 상실하기 십상이다. 역사는 그런 권력자의 폐해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제대로 역사를 바라봐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정배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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