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때 8개 라인 가동했지만, 지금은 1개 라인에 하루 7만여 장 공급

“언젠가 헤어지겠지만, 같이 헤어지고 싶다.”

“이 사무실이 드라마 <첫사랑>을 찍었던 곳이죠. 배용준과 이승연이.”

96년 드라마를 떠올려도 자연스러울 만큼 <육림연탄> 사무실은 오래된 정취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지금의 <육림연탄> 자리는 원래 동원연탄이 있던 자리로, 그 뒤를 이어 대림연탄이 있었으나 윗동네에 있던 육림연탄과 94년 합병하면서 현 육림연탄이 그 오랜 역사의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육림연탄 공장은 현재 1개의 생산라인만 가동되고 있는데, 한창 때는 8개 라인을 모두 돌리며 강원 영서북부 전역에 물량을 공급했다. 지금은 그 시절과 비교가 되지 않지만 춘천을 비롯해 홍천·화천 등지에 하루 평균 7만여 장의 연탄을 공급하고 있다.
 
직원 50여 명 평균연령 50~60대

심병석(52) 육림연탄 대표는 서른 살에 고향인 부산을 떠나 춘천으로 파견 아닌 파견을 온 이후, 올해로 22년째 육림연탄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표이사를 맡은 지는 5년이 됐다. 직원 13명에 수송업자들까지 5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심병석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직원들이 다치지 않는 것.

직원 평균연령이 50~60대인데, 그중엔 육림연탄과 30년을 함께 한 70대 직원도 몇이나 된다.

“까매져서 그렇지 그에 비하면 일은 편하다. 한 번 들어오면 이만한 일도 없다. 들어오면 안 나간다”며 웃는다. 사양산업인데다 젊은이들이 선호하지 않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오래 함께 손발을 맞출 사람이 필요해 쉽게 사람을 뽑지 않는다는 심 대표의 설명이다. 최근에 새 식구로 40대 막내가 들어오기는 했다.
굴곡도 많았던 육림연탄이다. 특히 존폐의 위기에 섰던 IMF 시절 전후엔, 수송업자들도 다 나가떨어지고 어려웠을 때, 직원들과 직접 연탄을 싣고 각지로 팔러 다녔던 시절, 심 대표는 그 힘들었던 시간이 오히려 고맙다고 회상했다.

“회사가 일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 총무부 직원이었기 때문에, 매일 번 돈을 검정 숯이 묻은 그대로 은행에 들러 입금했던 기억이 난다”며 아련한 기억을 꺼내는 심 대표는 그렇게 버티다보니 저력이란 것도 생겼다고 기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근무시간은 8시부터 5시까지지만 직원들은 7시부터 나와서 준비한다. 매사에 아끼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배운다는 심 대표는 ‘연탄산업이 기본적으로 따뜻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연탄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연탄을 제공하는 즐거움

연탄이 필요한 사람에게 책임지고 배달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여 독거노인이나 오지,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방법으로라도 연탄을 제공했을 때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고 심 대표는 말했다. 그런 연장선에서 연탄은행 등에 기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언젠가 가평 설악면에 들어온 민원을 여러 경로로 연락한 끝에 군부대 협조까지 얻어 배달한 기억은 지금도 뿌듯하다.
앞으로 향후 5년을 직원들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지, 회사의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고민 중이라는 심 대표 말에 오랜 역사를 간직한 연탄공장을 이끌어가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수송업자들의 차에 실려 집집이 배달될 연탄을 보면서, 시민들의 애환이 연탄구멍에 송송히 박힌 건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 애환이 온기가 되고, 다 타들어가 재가 되면 근심이 사라질지. 육림공장은 그 온기의 원천이었고 앞으로도 시민들과 함께 할 것이다.

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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