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면 아이러니한 일들이 많다. 1770년 즈음, 영국의 제임스 쿤 선장이 호주를 몇 차례 탐사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을 자신이 발견했으며 이를 영국령이라 선포한다. 수만 년을 그 땅에서 살아온 원주민이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그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서구의 선교사들은 원주민 언어는 원숭이 말이라고 했다.

그 후 영국인은 원주민을 학살하며 꾸준히 호주를 지배해 갔다. 어느 정도 정착이 되자 새로운 사냥감을 찾던 이들은 토끼를 들여올 생각을 한다. 처음 24마리를 영국에서 들여왔는데 특별한 천적이 없는 토끼는 60년 만에 100억 마리로 증식해버린다. 1902년 백인 목장주들은 목초지를 토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륙의 남북을 수직 분할하는 3,256Km의 토끼 울타리를 설치한다.

영화 《토끼 울타리, Rabbit-Proof Fence》(2002)는 호주의 가장 큰 모순을 상징하는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했다. 토끼 울타리는 자신들이 저질러 놓은 잘못을 회피하면서 자신들만을 보호하겠다는 차단벽의 상징이다. 비겁한 이들은 견고한 차단벽 뒤로 숨는다.

1950년대에 호주는 대대적으로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들을 백인들과 분리시키기 시작한다. 아이들을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결혼도 규제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개종을 강요하고 영어만을 사용하도록 강제한다. 명분은 원주민 순수혈통 보호지만, 실제로는 혼혈인들을 말살시키고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을 막으려는 백인보호정책의 일환이었다.

호주에 정착한 백인들은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자 원주민을 자신들의 동네로 끌어들였다. 자연스럽게 백인과 원주민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혼혈인들이 태어나게 되었다. 이들의 수가 늘어나자 다시 원주민을 격리시키려는 마음이 든 것이다. 원주민은 호주의 토끼와 유사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인간사냥꾼을 피해 여러 곳을 다닌다. 자신들을 잡기 위해 토끼몰이 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결국 보호구역이라는 토끼장에 갇히지만 그곳을 벗어나 집으로 향한다. 아이들은 잔인한 토끼 울타리를 따라 긴 여행을 떠난다.

자신들의 잘못을 두터운 차단벽으로 막고 그 뒤에 숨는 비겁한 인생들을 본다. 교묘히 논리를 뒤집어 자신들의 이득만을 챙기는 이들을 본다. 비겁함과의 싸움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이정배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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