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농민’ 백남기 선생이 경찰의 살인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맨 지 11일 째다. 지금 기적이 필요한 곳은 그분의 병실이다. 백 선생이 쓰러지는 순간의 영상을 보면 경찰의 가해는 명백히 의도적이다. 물대포가 오는 줄 모르고 서 있다 순식간에 가격 당해 피를 흘리며 고꾸라졌다. 국가는 그렇게 칠순의 노인을 쓰러뜨렸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 행위다. 뻔뻔한 국가! 한때나마 한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한 지구촌의 모범생이었으나 불과 몇 년 만에 파탄이 나 가속역주행 중이다.

차벽에 막힌 광화문은 소통단절과 툭하면 주먹질인 정권의 민낯이었다. 국가의 체면이고 뭐고 다 벗어 던진 채 폭력을 휘두르던 전두환 시절이 솔직했다면 망발일까. 체육관 대통령 때나 직선대통령 정부가 다르지 않다. 박종철에 대한 물고문 살인과, 고희의 노인에게 물대포를 쏴 식물인간 상태에 빠뜨린 것은 도긴 개긴 아닌가.

박근혜 정부는 아직까지도 십삼만 명의 주권자들이 왜 광화문에 나왔는지 성찰하지 않는다. “전원 사법처리!”, “불법 폭력시위 엄단!”같은 발언이 스테레오 타입으로 관제언론을 통해 흘러나올 뿐이다. 끔찍하게 많이 들어본 소리다.

새누리당은 한 술 더 뜬다. “미국에서는 경찰들이 총을 쏴서 시민들이 죽는데 80~90%는 정당하다고 나온다. 이게 선진국 공권력 아닌가?” 이완영 의원의 말이다. 미국은 차벽을 쳐 이동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다. 백악관 주변은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이 의원은 아무나 총기 휴대가 가능한 미국에서 치안유지를 해야 하는 경찰의 특수성을 못 본 채 했다. 몰랐다면 무식한 거고, 알았다면 국민을 속인 짓이다.

종편은 “폭력 시위를 언제까지 관용만 할 것이냐”는 피해자 코스프레로 국가의 폭력성을 감춘다. 비무장 국민을 사경에 빠뜨린 공권력의 만행에 대해서는 너그럽다. 되레 시위에 참가한 단체들을 ‘폭력시위’의 프레임에 가둬 공안몰이를 할 태세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은 민노총 등 8개 단체 사무실을 압수수색 하고, 40여 개 단체 대표들에게 소환장을 보냈다.

공안유령이 넘치는 하수돗물처럼 도시에 스며들고 있다. “수만 명의 주사파가 암약하고 있다”(박홍 전 서강대총장)고 협박하고, “죽음의 굿판을 때려치우라”(김지하 시인)며 선동한 1994년의 재림인가? 그러고 보니 차고 넘치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쌀값 폭락, 전월세 폭등과 노동법 개악 같은 민생의제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있다.

국가유공자가 받는 서훈을 주겠다고 하자, “민주화가 되면 그게 상”이라며 마다했다는 백 선생의 도량이 새삼 커 보이는 시절이다.

고광헌 (시인, 한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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