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김유정문학촌 근처에 있는 ‘책과 인쇄박물관’에 들렀다. 3층으로 이뤄진 전시관은 인쇄전시관, 고서전시관, 근현대 책전시관으로 배치돼 있고, 국·내외 인쇄기계들의 변천과정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국내에 몇 안 되는 ‘활자주조공’이 직접 납활자를 주조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출판사와 인쇄소를 건축을 빗대어 말할 때 흔히 “출판사에서 이뤄지는 편집은 설계과정이고, 인쇄는 시공과정이다”라고 한다. 잘된 설계라도 질 좋은 시공을 거쳐야 훌륭한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다. 처음 출판사를 운영할 때 편집을 마치면 인쇄소와 제본소를 자주 드나들었다. 마스터 인쇄기가 규칙적으로 종이를 집고 뱉어내는 모습, 옵셋 인쇄기에서 고속으로 컬러인쇄물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과 규칙적인 기계음은 항상 마음을 설레게 했다.

과거에는 출판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조선시대 서적의 출판은 백성을 교화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였고, 따라서 국가가 출판의 주체가 되어 이를 주도했다. 국가 외에 사찰, 서원도 출판의 한 주체였고, 지방행정기관도 중앙정부의 역할을 대신해 출판을 했다.

《조선왕조실록》의 출판관련 기사나 책판을 조사해 수록한 《책판목록》, 《관동지》·《강원도지》 등 지지류의 책판조를 보면 강원도에서도 출판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주로 감영이 있던 원주에서 이루어졌으나, 춘천에서도 소량 출판이 이루어졌다. 출판지로서 춘천의 역할이 두드러진 것은 《강원도지》 춘천 책판조에 언급돼 있는 가정리 소재 책판이다. 이는 의암 류인석 선생과 관련돼 있다. 선생은 가정리에 머무는 동안 가정서사에서 《송원화동사합편강목》 33권을 편찬하게 했고 활자본 33권 33책을 가정리 두니산 아래 만세사에서 간행했다. 의암 선생은 1911년 연해주에서 고려구로 이주하면서도 서적간행을 이어갔다. 《의암집》은 고려구에 인쇄소를 차려놓고 1917년 출판했으나 일제와 동북군벌에 의해 몰수돼 1917년판 《의암집》은 모두 3질뿐이다. 의암학회에서 2006년부터 번역하기 시작해 2010년 《국역 의암집》을 완간했다.

국내를 떠나 국외로 이어지는 독립투쟁의 힘든 노정 속에서 끊임없이 저술하고, 출판했던 열정을 보자면 참으로 경이롭다. 출판은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국역 의암집》을 읽다보면 출판을 위한 경제적 후원, 종이 조달, 교정 및 편찬과정이 언급돼 있는 곳이 많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보이는 것은 출판과정의 수고로움을 익히 알기 때문이리라.
출판은 기록이다. 춘천을 문화의 도시로 만들자는 말들을 많이 한다. 문화도시로 만들 때 항상 궁핍한 것은 그것에 맞는 스토리다. 그 스토리도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기에 역사성이 부여될 때 비로소 생명력이 생긴다. 역사성은 기록의 복원이고 과거를 알고자 하는 노력에서 생성된다. 기록에는 출판뿐만 아니라 사진이나 영상, 소리 등 많은 것들이 있다. 기록의 매체는 항상 변화하고 소멸한다.

<춘천사람들>이 다시 춘천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 과정들을 모으고, 그 과정에 관여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다시 기록하는 작업을 한 번 해보고 싶다. 사유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 보다 기록을 위해 애썼던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원미경(출판인)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