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진포라는 곳

김창균


화진, 화진,
하고 소리 내어 부르면
나루에 꽃들 조용히 진다.
언제 저렇게 조용한 낙화를
본 적 있었던가
발진하는 몸 뒤집으며
제 살에 문신을 새기는
봄 꽃나무처럼
망망한 몸에 수를 놓는
화진,
하루 종일 발음해도
닿지 못하는
닿아도 금세 사라지는
화진.
거란, 여진, 이런 이름들과도
어쩌면 가까이 있었을 것만 같은
그 머언 먼
북쪽.

- 『먼 북쪽』 (세계사, 2009)


원래는 김일성 별장, 이승만 별장으로 유명한 화진포지요. 그런데 이 시를 읽으면서 이제는 아무래도 김창균 시인의 시 때문에 더 유명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시는 발명보다는 발견에 더 가까운 작업이 아닐까?’ 여러 번 화진포를 갔습니다만, 이 시를 읽고 보니 화진포를 다시 가게 된다면 그 전과는 전혀 다른 화진포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인 덕분에 화진포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으니 말입니다.

“화진, 화진,/ 하고 소리 내어 부르면” 꽃이 떨어지는 곳이랍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경험하지 못한, 조용한 낙화를 보면서 시인은 하루 종일 ‘화진’을 부르지만 보세요. 아무리 불러도 시인의 목소리가 그 이름 ‘화진’에 “닿지 못하”고, 닿았다 싶어도 “금세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고 보면 ‘화진’은 지명이라기보다는 ‘인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첫사랑, 그 여자의 이름은 아니었을까? “거란, 여진, 이런 이름들”도 어쩌면 한 때 사랑했던 여자들은 아닐까? 이제는 닿지 못하는 “머언 먼/ 북쪽”이 되어버린 그 여자들 말입니다.

독자가 개입할 수 있는,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는 그런 틈을 자간에, 행간에 만들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닌데요. 이 시는 그런 틈을 참 교묘히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겨울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화진, 화진에 한 번 다녀오시는 것도 좋을 듯 싶네요.

박제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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