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식
가은아!
생일을 축하한다.
너의 스물네 번째 생일이 너의 졸업 즈음이다 보니 부득이 그에 따른 이야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구나. 하루가 다르게 기본적 사회 자본이랄 수 있는 공통의 규범과 신뢰가 붕괴되고, 유대감이 훼손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너를 당혹스럽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너를 두르고 있는 감정의 옷은 여려 겹이겠지만 가장 답답하게 죄고 있는 건 아마 ‘두려움’이란 코르셋이겠지. 두려움은 외부에서 은밀히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는 마치 본래 그곳에 있었던 것 마냥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습성이 있지. 그러다가 마음의 약한 고리를 찾아내면 어김없이 끊고 들어와 주인으로 군림하며 우리를 부리려 하지. 나 역시 네 나이 무렵 어김없이 그 괴물을 만났었다. 두려움을 이겨낼 묘책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닌 내가 할 수 있었던 거라곤, 책속의 지혜를 빌려 쓰는 것뿐이었단다. 단순하고 진지한 삶(Plain living & high thinking)을 속삭이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와 열망(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을 외치는 체 게바라를 들으며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리만큼 두려움을 내게서 떨어뜨려 놓는 거였단다. 그 단순함만으로도 효과가 있다는 것은, 두려움이 허상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당시 스물셋이었던 내 형편이라 해봐야, 아직 대학에 입학하지도 않았으며, 군 복무 중이었으며, 의지할 사랑이나 딱히 기댈 언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들을 통하여 삶에 대한 기준 하나를 세우고 났더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지더라. 불행으로 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첫 번째 피난처를 만드는데 성공한 셈이지. 그때 그들에게서 느꼈던 전율은 지금도 내 가슴에서 파동을 그리며 나의 삶을 술렁이게 하고 있으니 어쩌면 ‘나의’ 행복은 그때 태어났는지 모른다. 바라건대, 너 역시 현실의 삶을 깊이 뿌리 내리기 위한 직업 찾기에 골몰할 게 아니라, 두려움을 최소화하는 방편의 직업적 ‘리얼리스트’가 되고 너의 가슴은 ‘불가능한 꿈’이 마르지 않는 샘으로 가꿀 수 있다면 좋겠다. 소위 ‘인생의 봄’을 열기 위해, 마치 구겨진 옷 주름 펴듯 너의 인생을 빳빳하게 다림질하려 애쓰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의 시선과 잣대를 절대시 하지 말고, 너는 ‘비틀거리며 정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처럼, 행복한 ‘네 마음의’ 오솔길을 갔으면 한다. 폭넓은 독서를 통하여 네 인식의 영역을 넓히고 혜안을 얻도록 하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루스벨트(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 F. D. Roosevelt)와 ‘두려움을 정복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는 러셀(To conquer fear is the beginning of wisdom. - Bertrand Russell)의 경구에 의지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도 좋으리라.
이충호 (영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