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가은아!
생일을 축하한다.

너의 스물네 번째 생일이 너의 졸업 즈음이다 보니 부득이 그에 따른 이야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구나. 하루가 다르게 기본적 사회 자본이랄 수 있는 공통의 규범과 신뢰가 붕괴되고, 유대감이 훼손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너를 당혹스럽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너를 두르고 있는 감정의 옷은 여려 겹이겠지만 가장 답답하게 죄고 있는 건 아마 ‘두려움’이란 코르셋이겠지. 두려움은 외부에서 은밀히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는 마치 본래 그곳에 있었던 것 마냥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습성이 있지. 그러다가 마음의 약한 고리를 찾아내면 어김없이 끊고 들어와 주인으로 군림하며 우리를 부리려 하지. 나 역시 네 나이 무렵 어김없이 그 괴물을 만났었다. 두려움을 이겨낼 묘책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닌 내가 할 수 있었던 거라곤, 책속의 지혜를 빌려 쓰는 것뿐이었단다. 단순하고 진지한 삶(Plain living & high thinking)을 속삭이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와 열망(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을 외치는 체 게바라를 들으며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리만큼 두려움을 내게서 떨어뜨려 놓는 거였단다. 그 단순함만으로도 효과가 있다는 것은, 두려움이 허상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당시 스물셋이었던 내 형편이라 해봐야, 아직 대학에 입학하지도 않았으며, 군 복무 중이었으며, 의지할 사랑이나 딱히 기댈 언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들을 통하여 삶에 대한 기준 하나를 세우고 났더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지더라. 불행으로 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첫 번째 피난처를 만드는데 성공한 셈이지. 그때 그들에게서 느꼈던 전율은 지금도 내 가슴에서 파동을 그리며 나의 삶을 술렁이게 하고 있으니 어쩌면 ‘나의’ 행복은 그때 태어났는지 모른다. 바라건대, 너 역시 현실의 삶을 깊이 뿌리 내리기 위한 직업 찾기에 골몰할 게 아니라, 두려움을 최소화하는 방편의 직업적 ‘리얼리스트’가 되고 너의 가슴은 ‘불가능한 꿈’이 마르지 않는 샘으로 가꿀 수 있다면 좋겠다. 소위 ‘인생의 봄’을 열기 위해, 마치 구겨진 옷 주름 펴듯 너의 인생을 빳빳하게 다림질하려 애쓰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의 시선과 잣대를 절대시 하지 말고, 너는 ‘비틀거리며 정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처럼, 행복한 ‘네 마음의’ 오솔길을 갔으면 한다. 폭넓은 독서를 통하여 네 인식의 영역을 넓히고 혜안을 얻도록 하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루스벨트(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 F. D. Roosevelt)와 ‘두려움을 정복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는 러셀(To conquer fear is the beginning of wisdom. - Bertrand Russell)의 경구에 의지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도 좋으리라.

이충호 (영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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