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도시는 일상생활에서 지역주민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최상의 구비조건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동네 치킨집부터 음식점·빵집·미용실·마트·학원·은행·병원·법률사무소·영화관·문화시설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다. 온갖 상품과 물건이 넘쳐나고, 스마트폰 손끝으로 모든 게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지금처럼 빠르고 광범위하고 편리한 시공간에 살던 시대는 없었다. 이런 시대에 지역민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지역경제가 선순환하면 생산-유통-소비-소득이 그물망으로 잘 엮어져 넉넉하고 풍요로울 듯하다. 그러나 정작 우리들 일상의 삶은 점점 고달프고 힘들어진다.

농촌에 풍년이 들어도 농부들은 한숨뿐이며,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쉬운 해고에 시달리고 있다. 지역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갈 곳이 없다. 동네 작은 슈퍼마켓이나 빵집, 떡집, 이제는 미용실까지 문어발 재벌들이 끼어들어 단물을 뽑아가고 있다. 정부는 제도 합리화를 내걸며 포악질을 해댄다. 투표 날 단 하루 주인이 되는 낮은 민주주의 수준에서 굴러가는 지역정치도 방패막이 돼주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지역민의 삶이 가파르게 내리막으로 치닫고 있어 주민들은 삶이 뿌리 채 뽑혀 나갈까 불안에 떨고 있다.

지역사회가 큰 위기다. 주민의 삶의 터전이 긴축경제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지역터전은 엄연히 있는데 지역을 품을 정치인도, 지역민도 없다. 지역민은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구성분자일 뿐이다. 소상인들은 급격하게 자생력을 잃어가고 지역경제의 객체로 전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에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어떻게 이 변화를 따라잡아야 할까? 밭에 밑거름이 충분해야 수확물이 많이 나오듯 지역이라는 큰 터전에 개개인의 이익 이전에 공공의 밑거름을 두텁게 만드는 게 생존의 첫걸음이다. 지역사회는 단지 개개인의 욕망추구 대상이 아니라 공공의 수평적인 삶의 터전인 것이다. 개개인의 지역주민 이전에 지역사회가 먼저다. 지역사회가 먼저 있고 난 후에 지역주민 개개인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거꾸로 살아온 것이다. 지역 공공선, 지역 정체성, 지역 풀뿌리 의식이라는 공공가치에 먼저 눈을 뜨는 것이 문제해결의 실마리일 것이다. 그 다음 단계가 지역주민의 지역사회 구성능력일 것이고, 그 다음 단계가 지역성이 유지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만들어 내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일에 상응하는 지역운동의 새로운 몇 사례를 들어보면,

1. 지역민 삶을 연결해주는 지역삶이 곧 미디어가 되는 <춘천사람들> 지역신문을 구독하는 일.

2. 생협 주부들이 월 1만원씩 모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사회 경제주체들에게 사업자금을 대여해 주는 시민뱅크 ‘묻지마 종자돈’ 회원이 되는 일.

3. 경쟁만능 시장경제 대신 협동과 호혜 공공선 실현 위해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춘천사회적경제네트워크’와 함께 하는 일.

4. 공적 정치를 사적 이익으로 돌리지 않는 참된 지역 정치인을 잘 뽑는 일을 들 수 있다.

지역민이 각자 삶의 공간은 다를지라도 지역 사회적 그물망에 일부라도 끈을 연결해 놓아야 위기시대에 살아남을 듯싶다.

한재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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