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농촌문제가 다 해결된 곳의 농민들은 자긍심이 넘친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재미도 있어야 하고 보람도 있어야 한다. 재미만 있고 보람이 없으면 허무하고, 보람이 있는데 재미가 없으면 그것도 오래 못 간다.

몸뚱이와 손발로 물건을 만지고 땀 흘리며 하는 일은 다 재미가 있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짓에는 쾌감이 따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게 하려고 유전자가 한 짓이겠다.
농사꾼들이 농사를 계속 짓는 건 재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도 드러내놓고 나처럼 얘기하지는 않는다. 맨날 힘들다고만 하지, 재미있다고는 안 한다. 아마도 자각하지 못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농사꾼이 농사에서 느끼는 재미라는 게 거의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거라서 그걸 알아채려면 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봄에 땅 갈고 씨앗 뿌리는 농사꾼들을 논둑이나 밭둑에서 한 번 만나 보시라. 온 들녘을 다 들었다 놓을 것 같은 팽팽한 봄기운이 훅 끼쳐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재미는 됐고 보람만 있으면 될 텐데, 보람이라는 건 이를테면 나의 즐거움, 나의 만족, 나의 이익이다. 선생님은 잘 자란 제자를 보면서, 의사는 말끔히 나은 환자를 보면서 보람을 느낄 것이다. 농사꾼이 느끼는 보람은 켜켜이 여러 층이 있을 텐데, 우선은 논밭에서 토실하게 잘 자란 농작물을 보면서 느끼는 보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보람은 내가 지어낸 채소며 곡식이나 과일이 맛있게, 건강하게, 귀하게, 가치 있게 누군가에게 먹힐 때, 주린 배를 채워줄 때일 것이다. 맛있고, 건강하고, 귀하고, 가치 있게 여겨지는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행복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귀하게 여겨지는 것. 그런데, 글쎄다. 돈 말고는 도무지 귀한 게 없는 세상에서, 이건 너무나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다.

백승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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