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풍물시장 4동 142호
만물사 김영달 대표(춘천풍물시장운영회 이사)



“품목이 얼마나 되는지는 나도 몰라. 그래서 만물사지.”

만물사의 김영달(64) 춘천풍물시장운영회 이사는 풍물시장의 산 역사이자, 착하고 사람 좋기로 소문난 춘천풍물시장의 명물이다. 요즘 보기 힘든 만물사라는 공간에서는 열쇠 제작과 시계 수리가 가능하며, 등산용품부터 스토브와 카세트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만물사는 김 이사가 서울과 인터넷을 오가며 찾아낸 것들로, 원래는 리어카 한 대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가게와 그 앞 가판대와 통로까지 채울 만큼 규모가 커졌다.

전국적으로 노점이 폐지·정리되던 시절인 1989년 8월, 명동에서 쫓겨나 약사천으로 내몰렸다. 처음엔 지붕 하나밖에 없는 맨 땅에 리어카 하나 놓고 시작한 노점 장사가 이제는 살만해졌다고 회상한다. “이제는 완전히 안정됐다. 맘 턱 놓고 산다”며 김 이사는 환하게 웃어 보인다.
그간의 어려움과 고생보따리는 말로 풀어놓을 수 없을 만큼 많지만 이제는 다 만물사의 추억이 된 듯했다. 그래도 가장 힘들었을 때를 묻는 질문에, 김 이사는 화재가 났던 2000년 3월 4일이라고 분명하게 기억을 되짚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십시일반 도와줘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며 아픈 기억을 훈훈하게 마무리한다.

“요즘처럼 회원들과 단합이 잘돼 있는 게 가장 즐겁다”는 김 이사는 “노점에서 장사하다 시장이 형성되니 우리가 한 번 똘똘 뭉쳐 살아보자 했던 게 지금까지 단합이 잘 되는 이유인 것 같다”며 춘천풍물시장의 끈끈한 인간관계를 자랑한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가게 생각만 하며 살았다. 아내가 섭섭해 한다”며 쑥스럽게 말을 꺼낸 김 이사는 30년 넘게 장사를 하면서 평일에 쉬는 날 없이 명절 때 이틀씩만 쉬었다고 했다. 김 이사가 살아오면서 꼭 지켜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김 이사는 “손님에게 말한 것은 꼭 지켜야 한다. 시간을 맞추는 것도 신용이다”라고 우직하게 답한다. 오전 9시에서 9시 30분 사이에 문을 열고, 저녁 8시 30분에 마감하고 정리하면 9시에 끝이 나는 김 이사의 하루 일과. 덕분에 아내와 두 딸과는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휴가는 한 번도 안 갔냐고 물었더니 “그 돈 있으면 물건을 사야 한다”고 당연한 듯 말했다. 김 이사는 그래서 아내와 딸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속내를 전했다. 올해와 내년에 대학을 졸업하는 두 딸은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 한다며 딸 자랑도 살짝 할 줄 아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김 이사는 “늘 손님에게 친절하고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물건을 팔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더불어 올해 시장에서 준비 중인 아케이드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돔만 설치되면 더 바랄 게 없다.”

앞으로 80살까지는 장사를 하고 싶다는 김 이사의 의지만큼 세월과 함께 쌓인 물건들이 임자를 다 찾을 때까지 김 이사가 만물사를 지키기를 기대해 본다. 춘천풍물시장에 가면 만물사에 들러보자. 혹시 필요한 물건이 있을지도 모른다.

김은하 기자


약사동 시절부터 오랜 세월 풍물시장을 지켜온 사람들. 이들이 있어 사람들은 시장을 찾고, 시장은 또 그렇게 사람냄새로 북적인다. <춘천사람들>은 두 차례에 걸쳐 춘천풍물시장의 대표 상인들을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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