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장군을 생각하니 울적해진다. 다산은 『목민심서』를 펼쳤다. 「이전(吏典)」 편에 직접 필사한 문장이 들어온다.

아첨 잘 하는 자는 충성스럽지 못하고, 간쟁하기
좋아하는 자는 배반하지 않는다.
이 점을 잘 살피면 실수하는 일이 적다. -용인(用人)-


지위는 비록 낮지만 현령에게도 다스리는 자로서의 도리가 있다. 힘써 아첨을 물리치고 간쟁을 흡족히 받아들이기를 노력해야 한다. (중략) 갑자기 조사를 받게 되면 어제까지 면전에서 아첨하던 자가 나서서 비행의 증인이 되어 작은 잘못까지도 들추어낸다. 오히려 참고 덮어주는 자는 이전에 간쟁으로 귀찮게 여겨지던 사람이다. 수령 된 사람은 모름지기 크게 반성해야 한다. 『다산필담』에 적혀 있는 말이다.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하기 위해 전라도 강진에서 지은 『목민심서』는 수령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임금을 대입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세자였을 때 예종은 남이 장군을 꺼려했고, 그 틈을 타 유자광이 무고를 했던 것이 아닌가. 임금은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신하를 멀리 하고, 듣기 거북하더라도 자신의 견해와 다른 신하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예종이 그랬으면 남이 장군의 인생도 바뀌었으리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북한강 바람도 다산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관천리부터 남이섬까지 이어지던 산 사이로 버짐처럼 산비탈에 밭이 보이곤 했다. 그마저도 동쪽 춘천 경계의 산에선 산짐승만 가끔 울 뿐이었다. 방하리는 마을 입구만 보이더니 긴 골짜기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맞은편 금대리는 나루터 옆 주막과 농가 몇 채가 마을 모양을 겨우 갖추었다. 남이섬을 지나자 색종이만 하던 하늘이 도화지처럼 넓어지더니 바람과 함께 풍악소리가 흘러온다. 가릉(가평)의 목민관은 제대로 근무하면서 풍악을 울리는 것일까. 일은 뒷전이고 연회를 베푸는 것이 제발 아니길 빌었다.

한 조각 하늘이 골짝 어귀부터 열리니 / 一蓋天從峽口開
가릉의 산천 풍기가 또한 아름답구나 / 嘉陵風氣亦佳哉
석지산 빛은 저 멀리 구불구불 푸르른데 / 石芝山色逶迤綠
때때로 풍악 울리니 군수가 오는 게로군 / 絲竹時時郡守來


가평의 옛 이름은 가릉(嘉陵)이다. 아름다운 구릉. 아름다운 이름 가릉은 언제부터인지 가평(加平)으로 변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가릉이 더 좋다. 아름답지 않은가. 협곡을 통과하던 사람은 갑자기 펼쳐진 넓은 고을을 보고 환호를 했으리라. 게다가 옆으로 뒤로 푸른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한 폭의 동양화다.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은 석지산이다. 향기 나는 지초(芝草)가 바위틈에 자라서 석지산이라고 상상한다. 강바람이 향기를 싣고 오는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섶지산이라 부른다. 석지산 옆은 명태산이다. 의미를 모르겠으나 덕분에 석지산의 이름이 돋보인다. 마침 가평역에서 잠시 멈췄던 기차가 강을 건너더니 명태산을 뚫고 사라진다. 안반지(달전리의 옛 이름이다)에서 바라보니 석지산과 명태산 사이에 주름이 길게 파였다. 장자곡이다. 예전에는 깊은 곳까지 사람이 살았으나, 지금은 산행하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가끔 정적을 깰 뿐이다.

이름이 반가워 남이섬 입구에 있는 안반지 닭갈비집에 들어갔다. 사장님은 석지산과 장자곡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신다. 예전의 나루터는 남이섬 선착장보다 더 위에 있었다. 방하리 사람들은 배를 타야 가평장에 올 수 있었고, 통학하는 학생들도 이곳을 경유하곤 했다. 닭갈비를 먹으러 오는 손님들의 반은 중국에서 온 여행객이다. 바삐 손님을 맞이하면서도 가평의 이곳저곳을 말할 때마다 생기가 넘친다.

남이섬주차장 뒤 옛 나루터에 잠시 멈췄다. 다산은 춘천을 향하다가 이곳 안반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해 짙은 안개를 뚫고 석지산 앞을 지나 춘천으로 향했다. 눈을 감았다. 다산이 탄 배는 천천히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자라섬 쪽에서 노 젓는 소리가 들려온다.

권혁진 (강원한문고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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