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가 춘천으로 돌아왔다. 포항, 그 먼 곳에서 대학을 다니다 군대 문제로 휴학을 하고 돌아온 것이다. 아주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F는 지금껏 봐 온 친구들과 달리 무게감이 남다른 아이였다.
F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모님 영향 때문인지 온 몸에 모범생 티가 배어 있었다. 또래 친구들의 경쾌함이나 가벼움 따위는 없는 그 친구만의 무거움이 있다고 해야 할까? F의 그 무거움은 ‘바름’에서 풍겨 나오는 듯 했다. ‘바름’이라는 것은 곧잘 딱딱함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바름’이라는 잣대는 다른 이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도구로도 곧잘 쓰인다. F는 딱 그런 잣대 하나가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아이 같았다.

지도할 당시 나는 F의 됨됨이를 많이 걱정했다.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릴지, 혹 다른 친구에게 상처 주지는 않을지 하는 오지랖 넓은 걱정을 했다. 사실 학교에서 그런 아이로 평이 나있기도 했다. F가 그런 아이가 된 것이 처음엔 기독교 신자라 그런 것은 아닌가 생각했지만,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F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참으로 열심히 생활을 하셨지만, 그리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였다고 했다. F의 어머니는 다리가 불편해 일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정육점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에게 성실함을 몸소 보이신 것 같았다. 그 어머니 곁에서 F는 어릴 적부터 일을 거드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자란 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너무 일찍 자라버린 마음의 조숙증이 F의 ‘바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F는 같이 수학과목을 듣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학업 능력이 좋지 못했다. 조금만 머리를 써야 하는 문제는 많이 어려워했다. 고2 과정의 수학은 사실 이해능력이 매우 중요한데, F는 그 부분에서 많이 아쉬운 학생이었다.

F 또한 자신의 두뇌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부족함을 메울 정도로 F는 성실했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일과 대학진학을 위한 노력에 흔들림이 없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했던가? F는 자신이 가진 단점을 극복하고 학교시험에서만큼은 수학 성적이 항상 100점이었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것만큼은 꼭 지키고자 했던 F의 꾸준함은 정말 칭찬할만했다. 그리고 끝내 본인이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다.

우린 가끔 아이들에게 사줄 거 다 사주고, 먹을 거 다 먹여주고, 공부만 하라는데 왜 그리 공부를 안 하는지 모르겠단 말을 주변에서 종종 듣는다. 이렇게 풍족한 데 왜 아이들은 나태하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가벼울까? 그 질문에 F 이야기가 조금은 답이 될지 모르겠다.

강종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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