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고인돌이
작가의 혼을 깨우다

며칠 남지 않은 전시회를 준비하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일찍 찾아온 봄볕이 온화한 오후, ‘고고학적 기상도’라는 특이한 주제로 전시회를 준비하는 작가를 만나기 위해 찾은 상상마당 갤러리. 전시회를 준비하는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사이로 심각한 표정의 임근우 작가가 서 있다.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지금 이 순간이 작가나 스태프들한테는 가장 긴장되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시간이라고 작가는 귀뜀한다. 이 순간이 전시회의 콘셉트와 관람객의 동선이 결정되고 전시회의 성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란다. 3월 7일부터 3월18일까지, 장소에 따라서는 4월 6일까지 춘천시내 5곳에서 동시에 전시회를 개최하려니 무척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 짐작이 간다.

‘고고학적 기상도’라는 특이한 콘셉트의 작품세계를 펼쳐가고 있는 임근우 작가는 춘천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다닌 후 충남대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공고를 나오고 공대를 나온 작가가 화가의 길을 걷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어린 시절 어느 책에선가 본 고인돌이 그림을 좋아하던 작가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는 것이다. 50년대 후반에 태어난 작가가 초등학교 2~3학년 무렵 처음 접한 고인돌을 통해 춘천의 역사가 원시시대부터 이어져왔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됐고, 틈만 나면 검정 고무신을 신고 소양강을 건너 20여리에 달하는 천전리 고인돌까지 걸어가 고인돌을 만져보고 귀도 대보며 원시인들과 교감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후 작가에게 고인돌은 춘천의 역사를 찾아가는 하나의 주제가 됐고, 화가의 길을 걸으면서 작품의 콘셉트로 자리잡게 됐다고 한다. 작가의 입에서 고인돌 이야기나 선사시대 이야기를 들으며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춘천이 고인돌 왕국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현실에서 작가의 입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처음으로 춘천의 고인돌을 발굴한 ‘도리이 류조’ 이야기가 나온다는 게 신기했다. 역사를 전공했다는 사람들도 간과하는 이야기를 작가의 입을 통해 들으며 작가가 고인돌에서 착안한 ‘고고학적 기상도’라는 콘셉트를 작품에 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을지 짐작이 갔다. 고인돌 이야기가 나오자 작가는 해박한 고고학적 지식을 쏟아낸다. 천전리 고인돌 숫자와 최근에 중도에서 발굴된 고인돌을 보면 춘천은 선사시대에 이미 거대한 나라를 형성한 것 아니냐고 견해를 밝히는 작가를 보니 작가의 작품이 왜 UN과 청와대에 걸렸는지 짐작이 간다.

사실 작가는 ‘고고학적 기상도’라는 작품의 콘셉트로 상당히 유명한 반열에 올라있다. 2015년에는 우정사업본부에서 우편번호 5자리 변경을 기념해 작가의 작품 5점을 이용해 우편엽서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의 제목에 5색이 들어간 이유가 혹시 오방색과 관계가 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화가는 다섯 곳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번 전시의 메인작품이 춘천의 동서남북에 고인돌을 하나씩 배치하고 중앙에 봉의산을 넣어 각각의 형상에 오방색을 넣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중도에서 발굴된 대규모 선사유적문제로 민감한 상황이라 신경이 쓰이지 않느냐고 묻자 “작품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만들려 하지도 않지만 그걸 피하려 하지도 않는다”는 의미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터뷰 내내 어느 작가가 이토록 지역의 역사흔적을 오래도록 작품에 담으려 노력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자신만의 작품세계로 승화해내는 작가의 예술혼이 절로 느껴졌다.

오동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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