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서 최초의 만세시위는 춘천농업학교 학생들이 전개했다. 1910년 4월 19일에 개교한 춘천농업학교는 1911년 2년제로 개편되면서 전국적인 명문학교로 발전했다. 1919년 3월 5일, 이 학교 졸업생인 김병환이 서울서 몰래 들어와 당시 2학년생인 김종식·유재화·정만시·김영한·김주경 등에게 시국상황과 세계정세를 설명하며 궐기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농업학교 학생들은 3월 7일 조회시간에 거사하기로 비밀리에 논의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교장 노무라가 2학년 학생들을 불러 눈물을 흘리며 만류했지만, 7일 아침 학생들은 일제히 운동장으로 몰려나와 만세를 부르며 교문 밖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일제는 무장병력으로 학교를 포위했다. 학생들은 교내에서 만세를 부르며 수업을 거부했다. 구 춘천여고 자리에 있던 춘천농업학교에서 가까운 정명여학당(구 춘천문화원 부근) 학생들도 동조했다. 학교 당국은 10일부터 1주일간 휴교조치를 단행하고 기숙사를 폐쇄했다. 주동자들은 모두 강원도경찰부에 연행돼 신문을 받았으나 학생들은 함구하며 저항했다. 다행히 노무라 교장의 요청과 조선인 경부의 중재로 학생들은 하루 만에 모두 석방됐다.

전흥우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