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곳을 찾아 유랑하는 유목민(nomad)들에게서 유래한 말로 노마디즘이란 말이 있다. 특정한 삶의 방식과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향해 찾아가는 자아를 의미한다.

이것은 공간적인 이동만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가는 것, 곧 한 자리에 앉아서도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말한다.

고정된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고정된 것들과의 싸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고정된 것들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원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양을 모는 유목인을 생각하면서 떠올리는 초원은 돌아다니는 ‘이주’나 ‘방목’이 아니라 차라리 앉아 있어도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그런 삶의 방식이요, 사유방식이다. 즉, 조화를 이루면서 자아를 확립하는 것과 행동이 자유자재로 흐르게 하는 것이다.

영화 ‘트렌센던스(Transcendence)’는 매우 색다른 상상력을 주었다. ‘초월’을 의미하는 이 영화는 인간두뇌의 모든 정보가 하디디스크에 그대로 업로드 되고, 업로드 된 정보의 덩어리가 하나의 인격을 유지하며 네트워크상에서 인간과 기존의 슈퍼컴퓨터가 하지 못한 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능력을 보여준다는 데서 초월의 의미를 보여줬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영화 ‘트렌센던스(Transcen-dence)’는 거대한 긍정 속에서 다원적 가치를 인정하는 노마디즘의 방식을 잘 살린 영화라 할 수 있다. 과학 기술의 진보와 신, 그리고 그 가운데 인간존재의 의미라는 문제의식까지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 인지적 능력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처리능력을 가진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것은 대 긍정의 세계관적 사고다.

결국 영화 ‘트렌센던스’는 스스로 진화해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되지만, 영화는 고도로 발달하는 과학이 인간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도 함께 보여줬다. 또한 윤리나 도덕이 과학이나 욕망에 잠식을 당한다는 것도 암시했다.

그렇다면 모든 물체의 움직임과 세상 돌아가는 힘마저 IT기술(인공지능)에 빼앗겨 살아가는 인간인 우리가 진정 지켜야할 본질은 무엇일까? 근대 모더니즘의 가치체계를 벗어나 다양한 개성과 가치체계를 인정하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함이 부각돼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는 과학기술은 가장 먼저 인류의 삶을 전제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현대에 급부상되어 떠오르고 있는 노마디즘(초월)적 사유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져본다.

선우미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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