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슬로푸드가 존재할까?”

슬로푸드는 상징이다. 그래서 허상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한국에는 한국음식이 있고 지역에는 지역음식이 있어야 하는데 세상이 변해 하나의 희망사항으로 만들어진 단어다. 그러므로 슬로푸드라는 단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까지 실천하는 것이 슬로푸드 운동일 것이다.

1986년에 미국의 패스트푸드 문화를 상징하는 맥도날드가 로마 스페인광장 앞에 입점하는 것을 시민들이 막으면서 탄생한 단어가 슬로푸드(Slow Food)다. 이 운동이 유럽으로 확산돼 1989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슬로푸드 선언’을 발표하면서 슬로푸드 국제기구가 탄생됐다. 현재 세계 160개 나라에 지부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2007년 슬로푸드 문화원을 시작으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파도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이에 맞서 자국의 식량주권과 식문화를 지키려는 저항운동이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발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망치’가 돼서 성장의 혜택을 일방적으로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몰아가는 신자유주의 불평등사회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이 자연발생적으로 터져 나왔고, 그 가운데 슬로푸드 운동은 세계시민의 연대를 추구하며 개인의 내면에 스며들어 자기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슬로푸드를 ‘혁명’이라고 표현한다.

슬로푸드 운동은 ‘식탁에서 누리는 즐거움’이야말로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라고 규정하며, 이 즐거움을 가능하게 하는 음식 자원, 전통, 그리고 문화를 보호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식생활을 해야 한다는 ‘친환경 미식’ 철학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친환경 미식’은 우리나라 ‘신토불이(身土不二)’와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슬로푸드 철학은 ‘땅이 곧 나의 몸이고 먹을거리가 곧 나의 몸이니 땅과 먹을거리를 깨끗하게 지키는 것이 나를 만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먹을거리와 환경의 밀접한 관계를 인식하고 음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슬로푸드 철학의 기본이다.

슬로푸드에서 말하는 좋고(good), 깨끗하고(clean), 공정한(fair) 음식이란 과거 우리 조상들이 먹던 그대로의 전통방식이며, 자연의 시간대로 순응하며 자란 무공해 먹을거리,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여러 단계를 거치지 않은 깨끗하고 신선한 농산물, 땅과 생산자들에게 제대로 대가를 지불하는 소비를 말한다. 값싼 것에 현혹되는 지금의 음식체계에서 생산자에게 공정한 대가를 줘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시혜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가 안전하고 안정적인 먹을거리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농부의 노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며, 먹을거리의 지속가능성은 농촌이나 농부의 존재를 넘어 나와 후손의 생존에 관한 일이다. 그렇기에 슬로푸드는 음식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공동 생산자로 생각한다. 어떻게 먹을거리가 생산되는지를 알고 적극적으로 생산자들을 지원함으로써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생산 과정의 일부분이자 파트너가 된다는 뜻이다.

슬로푸드는 음식을 통해 우리 생활 그 자체에서 결코 서두름이 없는 자연스러운 생명의 리듬에 맞는 속도를 되찾게 한다. 먹을거리를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즐기는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대감은 공동체의 씨를 싹 틔워 삶의 질을 높인다. 이러한 유대감은 배추 한 포기, 콩나물 한 봉지, 시장바구니에 담아 넣는 그것만으로도 공동체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고 그래서 행복해지고 있음을 농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알려준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직접 다듬고 손질해 요리하는 음식으로 서로 도와 음식준비를 하고, 함께 만들며 음식에 대해 생각하고, 음식을 만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느리게 음식을 음미하면서 먹는 것.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경쟁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여유로운 식사, 여유로운 습관, 여유로운 문화, 여유로운 생활이 한 궤도에 서는 것. 슬로라이프를 추구하며 생활습관의 완전한 변화를 이루고자 실천하는 운동. 이것이 바로 슬로푸드다!

“인류는 종이 소멸되는 위험에 처하기 전에 속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속도와 효율성에 도취한 흐름에 전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느리고 오래 가는 기쁨과 즐거움을 적절하게 누려야 한다. 이러한 우리의 방어는 슬로푸드 식탁에서 시작돼야 한다.”- <국제 슬로푸드 운동 선언문> 중에서

 

 

 

채성희 시민기자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 지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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