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재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단히 다양하다. 중국 진시황제는 황제의 도장만을 옥으로 쓰게 해 ‘옥새(玉璽)’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그 이전의 시대에도 관가에 쓰는 인장이 벼슬의 높낮이에 따라 금은동의 금속이 쓰였고, 현재 대한민국의 국새도 금인(金印)이니 전통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금속은 가격이 높을 뿐만 아니라 주물의 틀(주형)을 만들고 금속을 녹여야 하는 등 매우 제작이 어렵다. 그 외에도 호안석을 비롯한 보석류, 상아, 물소뿔, 죽근(竹根, 대나무 뿌리), 흑단 대추나무 등 단단하고 새기기 쉬운 재료는 모두 인장의 재료로 활용됐다.

그러던 중 중국 원나라 때 왕면이 화유석이라는 돌을 발견했는데, 이 돌은 칼이 들어가기 때문에 의도대로 인장을 새길 수 있었다.

 그리고 명나라 말기의 문팽*은 주로 상아에다 인장을 새겼는데 납석을 얻은 뒤로는 돌에만 새겨서 전각이 본격적인 예술로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 인장석들은 납석(蠟石)이다. 납석은 대리석보다는 무르고 활석(곱돌)보다는 단단해서 사람의 힘으로도 어렵지 않게 인장을 제작할 수 있다. 또한 이 돌은 문양과 석질도 다양해서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자아낸다. 가장 귀하게 여기는 돌은 수산석 계열의 전황석(田黃石)이다. 이 돌은 황금색에 약간 붉은 기운이 도는 반투명인데 발견되기만 하면 무게를 달아서 금값의 세 배를 준다고 하니 웬만한 크기면 억대를 넘어간다. 주로 일본인들이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한말 인장 수집가인 이용문이 전황석을 얻은 기념으로 자신의 집이름[堂號]를 ‘전황당(田黃堂)’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귀한 돌이다. 다음으로 창화석 계열의 계혈석(鷄血石)을 들 수 있다. 이는 돌의 문양이 마치 닭의 피를 뿌린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도 전황석만큼은 아니지만 귀한 돌이어서 매우 고가로 판매된다. 그러나 중국에 가면 일반 인장석에 페인트를 발라서 흡사 계혈석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경우가 있어 많이 속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일반화된 돌 중 파림석, 청전석 등은 석질이 파닥파닥하여 잘 떨어져 나가는 특징이 있다. 근자에는 몽고석, 요령석 등이 국내에 수입돼 전각가들의 호사를 더했는데, 몽고석은 일반적인 석질이며 요령석은 이제껏 본 인재(印材) 중 가장 물러서 아주 쉽게 파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남 해남에서 해남석이 꾸준히 나왔으나 일본에 수출도 하고 국내 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현재는 고갈된 상태다. 그동안 확인하기로는 회색과 붉은색, 검정색 등이 있는데 문양이 아름답고 석질이 우수해서 전각을 하기에 더 없이 좋다. 가끔 철광이 들어 있어서 전각도의 날을 부러뜨리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만한 인재도 찾기 어렵다. 현재 북한석이라는 돌이 수입되는데 구체적인 산지를 알지 못하며 아직 칼을 대보지 못했다. 근자에 인사동의 한 업자가 중국 항주에서 인재 가공공장을 하는데 백두산에서 인재를 찾아 조달하다가 경제성이 떨어져 현재 생산을 중단한 상태다. 백두산석은 깔끔한 점박이 무늬를 가지고 있으며 석질이 대단히 우수하다. 빨리 통일이 돼서 마음 놓고 백두산석에 전각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

* 문팽(文彭, 1498년 ~ 1573년) 중국 장주(長洲) 사람. 자는 壽承이고, 호는 三橋, 國子先生이다. 明나라 때 관리이자 書畵家. 명대를 대표하는 문징명(文徵明)의 장자로 明經廷試에서 장원했다. 書畫에 능했고, 특히 전각예술의 비조로 여겨진다.

원용석 (한국전각학연구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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