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를 포기하다

복효근


똥을 쌌다
누렇게 빛을 내는 황금 똥
깨어보니 꿈이었다
들은 바는 있어 부정 탈까 발설하지 않고
맨 처음 떠오르는 숫자를 기억해두었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려운 두 누나 집도 지어주고
자동차를 바꾸고 아내도
아니, 아내는 이쁜 두 딸을 낳아주었으니
남 보는 눈도 있고 하니 좀 더 생각해볼 것이다

직장도 바꾸고
물론 시도 쓰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시인이라는 이름이 버겁기만 하고
머리털 빠지는 그 짓을
뚝심 좋은 이정록 같은 이에게나 맡길 것이다

내일 퇴근 길에 들러서 사올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어디서 로또를 사지
또 뭐라고 말해야 할까 똥 꿈을 꾸었다고 쑥스럽게
그건 그렇고 내가 부자가 되면
화초에 물은 누가 줄 것이며 잡초는 어떻게 하고.....

안 되겠다
로또를 포기하기로 했다
나는 갑부가 되지 말아야겠다
나는 갑부가 되지 말아야겠다

- 『따뜻한 외면』(실천문학, 2013)

똥 꿈을 꾸었으니 로또를 사야겠다는 마음이야 누군들 다르겠습니까. 저도 참 많은 꿈을 꾸었더랬습니다. 똥 꿈, 집이 불에 타는 꿈, 내가 죽는 꿈... 그때마다 로또를 샀더랬지요. 아직 결과가 나기 전까지는 분명히 유가증권이니 지갑에 꼭꼭 넣어 다니는 일주일이 참 뿌듯하지요. 그리고 복효근 시인처럼 별의별 생각을 다합니다. 십 억으로 무엇을 할까? 부모 형제들에게는 얼마를 나눠줄까? 땅부터 살까? 직장은 그만 둬야 하나? 물론 늘 꽝이었지요. 그래도 아내를 바꿀 생각은 못했는데 복효근 시인, 참 대단하지요? 형수한테 얼마나 타박을 받으시려고... 물론 시인은 끝내 복권을 사지 못하지요. 그 이유가 저를 미소짓게 만듭니다.

그런데, 제 지갑에는 또 다시 오천원짜리 로또가 들어있네요. 아무래도 저는 아직 멀었나 봅니다. 그렇다 해도 재물보다는 행복지수를 쌓는 게 더 중요하겠지요.

박제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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