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과 상인이 한마음으로 춘천 최대 과일·채소시장으로 제2의 전성기 꿈꿔

이른 시간에 잠깐 섰다가 물건이 팔리면 바로 장을 접는다고 해서 붙여진 번개시장. 그러나 춘천의 번개시장만큼 시대의 영광과 좌절,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져 사연을 만들어내는 곳은 드물다. 박사마을의 원동력이 된 곳, 춘천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서 특산물이 모여드는 최대 규모의 도매상, 대형마트의 등장과 더불어 대부분의 전통시장처럼 쇠락을 맞게 된 최근의 상황, 그리고 갈등과 좌절을 딛고 도시재생사업으로 ‘새로운 새벽’을 준비하는 시장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번개시장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갈 역사를 들어봤다.

동트기도 전, 여전히 빛보다 어둠이 더 많이 내려앉아 있는 이른 새벽, 강 건너 서면의 아낙들은 그 깊은 어둠을 건너 직접 키우거나 산에서 뜯은 채소와 산나물들을 광주리 하나 가득 이고 나와 뱃터 주변에 좌판을 벌였다. 그 어머니들의 부지런한 새벽장 덕에 서면의 젊은이들은 성실과 근면을 자연스레 몸에 익히고, 부모님의 정성을 마음에 새겨 우수한 인재로 컸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흘러내려오는 곳. 소양로1가 ‘번개시장’이 바로 그곳이다. 이름처럼 장은 새벽에 열려 오전 중에 번개처럼 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제 강점기 서면 일대 도심 사람들에게 채소를 팔면서 시작된 장이라고 하니, 거의 100년의 역사를 안고 있는 셈이다.

1970년대에 군 차량과 좌판 사이에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자 상인들을 정미소가 있던 지금의 공터로 이동시킨 탓에 한때 ‘호반시장’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1980년대엔 인근 연탄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른 새벽의 상설장으로는 규모가 상당했다. 한때 리어카 짐만 하루에 200대가 오가고, 노점상까지 합하면 500여명의 상인이 북적이던 춘천 최대의 채소·과일 도소매시장으로 춘천뿐 아니라 양구, 화천, 홍천 등 인근 지역의 생산자들까지 납품을 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다양하고 신선한 채소와 부지런한 생산자들의 신뢰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시장생태의 변화가 몰려왔다. 번개시장상인연합회 지성열 회장은 북적이던 시장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노점이 줄어들기 시작하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중앙시장이나 풍물시장이 어렵다고 할 때에도 번개시장은 동네 구멍가게나 큰 식당 등에 도매로 물건을 팔았었기 때문에 비교적 꾸준히 경기가 좋은 편이었어요. 그런데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우리한테 물건을 해 가던 동네 구멍가게나 슈퍼마켓이 문을 닫고, 심지어 강 건너에도 농협마트나 큰 규모의 마트가 생기고 나니 그나마 꾸준히 시장을 이용하던 주민들도 이곳에 오지 않게 된 거지요.” 유명 대형마트 한 개가 들어설 때마다 그 지역의 소비방식이 바뀐다. 눈을 마주치며 값을 흥정하고 덤을 주며 단골이 되어가던 이웃들은 깨끗하고 편리한 대형마켓의 환경과 툭하면 펼쳐지는 1+1, 산지직송 세일 등의 공격적 마케팅 문구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대기업의 횡포, 동네 상권까지 파고드는 비열한 마케팅을 비난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장 상인들과 주민들이 머리와 마음을 모아, 번개시장을 중심으로 지역재생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2014년 땅 소유자들과 상인들 간의 갈등을 딛고, 번개시장상인회를 발족하면서 비로소 춘천번개시장은 전통시장으로 인증을 받게 됐다. 번개시장의 역사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출발이었지만, 초대 지성열 초대회장을 비롯한 상인들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도 단단히 결합돼 있었다. 상인들은 변화하는 시대와 소비행태를 읽고, 그에 대처하면서 자신들만의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기 위해 춘천시 문화재단과 함께 마을대학을 열고, 타 지역의 우수 전통시장을 견학하고, 번개시장 상인들이 한두 점씩 기증한 물품으로 번개시장 생활사박물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깨끗하고 다양한 구매환경에 대한 이용자들의 욕구에 먼저 대응하기 위해 우선 시장의 청결유지, 노점상 확대, 각종 문화행사 개최 등 다채로운 노력을 곁들였다.

지저분했던 시장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시장상인들이 함께 청소를 하는 한편, 전담 청소인력을 두어 상시적으로 청결유지에 신경을 썼다. 노점상들에게 청소비 명목으로 받았던 2000원을 상인회에서 부담하는 등 더 많은 판매자들을 확보하는데도 정성을 기울였다. 그 결과 상인회가 조직되기 전인 2014년보다 2015년에는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3배가량 늘어나 시장 활성화 노력이 서서히 빛을 보고 있다.

상인들의 마음이 모아지자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도시재생사업 선정을 위해 노력한 끝에, 2015년 소양로 번개시장 일원 24만5천㎡를 대상으로 2020년까지 국비 등 100억원 규모의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철거 위주의 정비사업과는 달리 시가 기반시설을 설치하고 주민들이 마을활성화 계획을 스스로 수립하도록 해 주거·상권·문화환경을 총체적으로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전통장의 인정과 관계성은 살리고, 현대의 편리와 쾌적함은 배가시켜 물건만이 아니라 다시 찾고 싶은 마음과 상인들의 정성이 장바구니에 담겨질 ‘번개시장’의 새로운 봄! 5월의 봄나물축제, 9월의 홍고추축제와 11월 김장시장만큼은 놓치지 말라는 지성열 회장의 당부를 수첩에 꼼꼼히 메모해본다.

허소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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