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길을 걷는 일과 비슷하다. 숨이 턱에까지 차도록 긴 언덕을 올라야 하는 때도 있고, 적당히 그늘져 신선한 바람 맞을 수 있는 평탄한 길을 걸을 때도 있다. 바위 사이를 비켜가기 위해 손발을 모두 써야 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갑작스레 불어난 냇물 때문에 신을 벗고 조심스레 걸어야 할 때도 있다. 때론 비바람이 나의 걸음을 방해할 때도 있다. 너른 벌판이 나를 잠시 쉬라고 붙잡기도 하고 쏟아지는 별빛이 현란하게 나를 유혹하기도 한다.

방향 없이 걷는 것이 힘겨운 걸음이듯, 목적 없이 인생을 사는 것은 수월치 않다. 부지런함도, 때로 닥치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도 모두 내가 가야할 방향과 목적지가 분명한데서 온다. 그래서 때때로 내가 어디로 걷고 있는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누구와 걷느냐 하는 것이다. 무슨 음식을 먹느냐 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하듯, 누구와 함께 길을 걷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이 동행을 한다. 이들 동행자들이 모여 하나의 큰 모둠을 이루기도 한다.

현대 정치는 기본적으로 정당정치다. 옛 표현에 의하면 붕당(朋黨)정치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모둠을 만들어 정치목적을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사람과 생각을 조직화한다. 세력을 불리기 위해 당원(黨員)을 확장하고, 다른 당 패거리에 싸움을 걸어 자기 결속을 다지기도 한다. 따라서 평소 잠잠하던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부랴부랴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자신들의 진영을 공고히 하지 않으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영화 ≪산티아고, 우리 메카로 가는 길(Saint-Jacques... La Mecque)≫(2005)에 출연하는 구성원은 다양하다. 핵심 구성원은 부모의 재산을 분배받으려는 3남매다. 산티아고 길을 순례해야 3남매가 재산을 분배 받을 수 있다고 부모가 유언을 남겼다. 여기에 사랑을 찾으려는 어린 남녀들과 종교적인 이유로 참가하는 이슬람교도가 함께한다.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가이드를 한다는 이의 안내를 따라 긴 순례여행을 떠난다.

여행 도중 티격태격하던 남매는 결속하기 시작하고 젊은이들은 사랑을 찾거나 자신을 찾게 된다. 종교적인 이유로 차별받던 이는 종교적 화합의 새로운 가능성을 얻게 된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길을 떠났던 이들이 진정한 자기정체성과 다양성 속에 하나라는 중요한 교훈을 차츰 획득해 나간다.
현대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철저히 진영논리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공동의 목적을 향해 길을 걸으며 서로의 생각을 드러내고 수없는 토론을 통해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완벽히 제거돼 있다. 오로지 공천해주는 자와 조직 내에 힘을 갖고 있는 이에게 무조건 복종해야만 정치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생각이 다르면 붕당을 떠나거나 영원히 정치계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런 막다른 골목을 등 뒤에 두고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은 오직 사냥개처럼 몸과 정신이 부서지도록 복종하는 것밖에 없다.
정치가 함께 길을 걷는 순례일 순 없을까?
 

이정배(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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