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와 판매자, 손님은
‘돈’이 아니라 ‘신뢰’가 바탕이어야죠!
경화청과 이태연 사장(62세)

 
향긋한 과일향이 봄맞이 나온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절로 기지개 켜게 한다. 대부분의 상인들이 그러하듯 <경화청과> 이태연 사장의 청춘도 시장 통에서 익어갔다. 20~30년 전 번개시장 골목은 춘천 최고의 도소매 시장이라는 명성에 맞게 ‘사람에 치어서 걸어 다니지 못할 만큼’ 사람들로 꽉 차곤 했었다. 사람들과 부딪히며 돈 버는 재미에 새벽 3~4시에 일어나 늦은 오후까지 일하면서도 피곤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대형마트의 출현은 골목상권을 하나하나 무너뜨리고 단골을 앗아가고, 그의 삶의 터전도 흔들었다. 일을 접고 싶은 마음이 여러 번 들었지만, 오로지 시장만 보고 시장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그에게 다른 선택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곳 시장에서 다르게 해보자! 2014년 상인회가 다시 서고, 임원진이 꾸려지면서 번개시장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고 한다. 이태연 사장은 그때 처음으로 고객응대 교육이며, 구매욕을 일으키는 진열방법 등을 배웠다. 물건만 사는 게 아니라 상인과 고객 간의 상호작용이나 관계성도 구매에 중요한 역할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한 마디라도 더 친절하게 정성을 기울였다. 여기에 도시재생사업이 유치되면서 이제 시장 사람들은 바닥을 치고, 튀어오를 준비와 기대를 하고 있고 있다. 의욕만으로는 안 될 터. 번개시장, 그리고 <경화청과>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뭐니 뭐니 해도 신선도와 싼 값이지요. 외국산 과일도 있지만 20%를 넘지 않아요. 대형마트나 다른 시장은 우선 유통과정에 여러 날이 걸려 다량으로 구매하고 저장했다가 판매하지만, 우리는 현지에서 실어온 날로부터 2~3일 이내에 다 팔아요. 깊은 산골마을까지 8시간씩 차를 타고 가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만져 믿을 만한 것만 골라 와요. 똑같은 용기에도 담기 나름인데 손님들이 종종 그래요. 어, 같은 팩인데 이건 훨씬 묵직하고 양이 많다고.”

신선함과 저렴한 값, 정직한 양과 포장. 참 단순하지만 상인과 손님 간에 이보다 더 근본적인 조건이 무엇이겠는가? 교통이나 환경의 불편함을 제외한다면, 번개시장의 장점은 무궁하다. 누가 생산한 것인지도, 물건을 파는 사람이 누군지도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대량구매로 얻은 싼값과 고급포장으로 유혹하는 마트와 달리, 산지 직거래로 수년간 인연이 돼 품질을 확인하고 거래하는 이태연 사장의 과일은 신선한 맛뿐만 아니라 믿을 만한 것을 먹는다는 안심도 준다. 이 사장이 물건을 해올 때에도 무리하게 싼 값을 요구하지 않는다. 신뢰가 쌓인 관계에서는 서로 물건에 맞게 타당한 거래가 이뤄진다. 자칫 이문을 조금 더 남기려다가 좋은 생산자도, 단골손님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기억에 남는 손님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싼 값을 찾아 거래를 끊었다가 결국은 다시 돌아온 손님, 한밤중에 임신한 아내가 딸기를 먹고 싶어 한다고 미안해하며 닫힌 문을 두드리던 젊은 남편, 오래 거래했지만 마트의 횡포로 결국 문을 닫아야했던 구멍가게 사장님. 이들 얼굴 하나하나가 ‘돈’이 아니라 ‘정’이고 ‘인연’이기에, 이태연 사장은 낡고 쇠락해가는 시장을 차마 떠나지 못했다.

아직도 그는 셔터 앞에 전화번호를 적어둔다. 12시까지 운영하는 마트의 불빛마저 꺼지고 문이 굳건히 닫힌 어느 늦은 밤, 임신한 아내의 입맛을 돋우려 어떤 젊은 사내가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이곳을 찾게 되면, 그냥 발길을 돌리지 말라는 신호다. 새벽장이라 밤잠이 아쉽지만 이웃의 간절함을 외면하지 말아야한다는 것, 그게 상인으로서의 ‘덕’이라고 이태연 사장은 말한다.

허소영 시민기자

봄이다! 나물이며 각종 채소에 저절로 눈길이 간다. 제대로 봄을 즐기려면 번개시장에 가볼 일이다.
춘천 최대의 도매시장으로서의 명성이 이때만큼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입맛 없는 어느 날 이른 시간, 시장에 가자.
번개시장의 3인방을 찾아 과일이며 나물을 사고 시원한 음료 한 잔을 들이켜 보자. ‘덤’과 함께 ‘정’도 장바구니 가득 들어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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