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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을 따라 북한강을 걷다 9 – 강촌, 현등협을 지나며

 삼악산에 가까워오자 바위산은 부드러우며 풍성한 흙산으로 변신한다. 맞은편 옛 강촌역 뒤로 바위가 기세 좋게 우뚝하다. 강촌역은 이사 갔다. 회색 시멘트로 만들어진 건물이었지만 젊은이들로 활기찼었다. 수많은 청춘들을 실어 나르던 철길은 전철화 되면서 곧은 직선 길을 찾아 나섰다. 이제 옛 강촌역은 건너편 삼악산과 그 밑을 흐르는 북한강을 바라보며 추억 속으로 여행 중이다.

 옛 강촌역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지나면서 강촌의 역사를 보게 되었다. 1970년대 강촌의 명물이었던 출렁다리는 관광객들의 추억과 낭만을 만들어 주곤, 1985년 철거되면서 교각만 남게 되었다. 교각에는 옛 다리 전경과 다리 위를 건너는 경운기를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보는 순간 30여 년 전으로 이끌고 간다. 현재 추억 속 출렁다리는 강촌테마파크를 잇는 물깨말교 옆에 복원되어 다시 강촌을 찾는 이들의 추억을 만드는 중이다.

 부릉부릉 소리 나는 곳으로 눈을 돌리니 강촌교 아래 강가로 내달리는 사발이가 보인다. 여러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린다. 젊은 웃음과 환호성이 들리자 1980년대에 MT 왔던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동쪽을 바라보니 양쪽 산 가운데로 북한강이 흐른다. 정약용은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이곳을 예로 들며 이러한 지형을 ‘협곡’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러면서 심산유곡(深山幽谷)을 협곡이라 부르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등달협(燈達峽)이라 불렀으나 정약용은 현등협(懸燈峽)이라 적고 시를 짓는다.9정약용

삼악산 아래 펼쳐진 협곡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이어져 있다.

현등협은 예전의 난산(蘭山)인데 懸燈古蘭山
절벽은 불에 탄 흙 이고 있고 絶壁戴焦土
양쪽 절벽 서로 부딪칠 듯하며 兩厓欲相撞
묶은 듯한 협곡은 늘 어두워라 束峽昏萬古
사람 어깨 부딪칠까 걱정스럽고 直愁礙人肩
강물은 실오라기처럼 통하는데 江流通一縷
높은 곳 나뭇잎은 바람에 흔들리고 高葉搖天風
무너질 듯 여울은 땅 기둥에 들려있으며 崩湍掀地柱
겹쳐진 산봉우리 태양을 삼키어 攢峯蝕太陽
맑은 낮에도 흙비가 날리네 淸晝騰霾雨
귀문(鬼門)¹에 빠진 것 같으니 決知陷鬼門
돌아갈 길 어디서 찾을거나 歸路將焉取
산등성이는 점차 굽어지며 동그랗고 山脊稍彎環
물 형세는 협유(夾庾)²의 활 편 듯한데 水勢開夾庾
차츰 닭 울고 개 짖는 소리 들리더니 漸聞鷄犬聲
멀리 인가의 울타리가 보이는구나 籬落遠可數

 1. 귀문(鬼門): 옛날 중국의 관문 이름으로, 오늘날 광서(廣西)의 북류(北流)와 옥림(玉林) 사이에 위치하는데 지형이 매우 험준하다고 한다.

 2. 《고공기(考工記)》에 “협유(夾庾)의 활은 다섯을 합하여 규격을 이룬다”라는 구절이 있다.

 첫 구에 등장한 ‘난산(蘭山)’에 대해 정약용은 《천우기행》에서 삼악산의 남쪽에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위 시도 같은 입장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춘천 고적 항목에서 “본래 고구려의 석달현(昔達縣)이다.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난산현으로 고쳐 우두주(牛頭州)의 관할 현으로 하였다.

 지금은 있던 곳이 어딘지 자세히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 자료는 고구려의 ‘석달현’이 ‘난산현’으로 바뀌었으며, 춘천지역에 속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자료보다 더 자세한 것은 엄황의 《춘주지》인데 정약용과 다르게 설명한다. “부(府) 북쪽 35리에 있다. 일명 고탄(古呑)이라 한다. 고구려 때에는 석달현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난산으로 고쳐 우두주의 관할 현으로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난산(蘭山)은 지금의 고탄리와 고성리 일대였다.

 다리를 건넜다. 삼악산 밑으로 자전거도로가 협곡을 따라 이어진다. 자전거도로 위는 협곡을 따라 다리가 길게 늘어섰다. 등선폭포 입구를 지난다. 연탄가스로 유명을 달리한 선배의 유골을 뿌린 곳이다. 잠시 숙연해진다. 건너편은 그러나 딴 세상이다. 레일바이크 시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노래 소리가 협곡에 울려 퍼진다.

권혁진 (강원한문고전연구소장)

권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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