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람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자연과 하나 되고, 지구와 하나 되는 흙길 맨발 걷기 100일(2023.4.10.~ 2023.7.19.)을 완수하였으며, 그 100일간의 노력으로 스스로 감동받아 나의 꿈과 가치와 자신감이 폭풍 성장하였으므로 그 정성을 기리어 내가 나에게 상장을 주어 칭찬합니다. 2023년 7월 19일. 작은 것의 꾸준한 실천이 기적을 만든다. 스마일 김선희.” ‘맨발 걷기’ 100일째 되는 날, 김선희가 자신에게 수여한 상장에 쓴 글이다. 춘천문화재단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20
‘모두의 살롱’에서 김선미를 만났다. 빈집을 재생해 조성한 커뮤니티 공간인 ‘모두의 살롱’은 회의실과 공유 부엌, 테라스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누구나 자유롭게 대여해 사용할 수 있다. 그는 ‘모두의 살롱’ 프로그램 ‘아침마당’의 ‘작심한달’에 참여해 매주 토요일 8시에 걷고 뛰었다. 익명으로 만난 벗들은 정이 두터워지면서 ‘로망실현’ 프로그램까지 함께하게 됐다.남편 직장 때문에 7년 동안 주말부부로 지내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2년 전 춘천으로 이사했다. 처음에는 춘천에서 이웃들이 장애 아이에 대해 직설적인 화법으로 묻는 게 많이
완도가 고향인 김상나는 중학교 시절까지 완도에서 보낸 뒤 서울로 전학해 1995년 강원대 무용학과에 1기로 입학했다. 춘천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졸업 후 지금까지 25년 가까이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다.무용학과에 처음 들어갈 때만 해도 아는 선배도 없이 밤늦은 시간에 12시까지 연습하고 또 다음 날 아침 7시에 다시 나와 연습을 반복하는 생활이 무척 힘들었다. 그렇게 무용학과를 졸업한 뒤 학교에서 예술강사로서 아이들에게 무용도 가르치고 무용단원으로도 활동했다. 2010년 무용단 ‘김상나댄스프로젝트’를 창단해 대
무대감독 김빛나는 극장 세팅은 기본이고 공연 일정 조정과 안전 관리까지 맡고 있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연극을 했다. 삼인조 극단을 구성해 작품을 만들었지만, 영세한 살림에 스태프를 따로 고용할 수 없어 극단 내에서 일을 도맡아 했다. 일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관리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공연예술 전문스태프 아카데미 ‘막’을 알게 돼 열심히 참여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공연예술전문스태프협동조합 ‘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작품을 만드는 것이 재밌어요. 하고 싶었던 일을 하니까 만족도도 높아요. 다만 일의 강도가 높은
김병찬은 춘천 출신의 영상제작 프로듀서다. 한림대 디지털미디어콘텐츠 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해 공급하는 ‘플로잉미디어’에 재직 중이다. 수자원공사에서 실시한 영화공모전에 ‘바다에게’라는 제목의 독립영화를 출품한 경력이 있다.그에게 춘천은 끝없는 청춘과 같다. 태어나 지금껏 살아온 곳이고,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춘천사람이다. 그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한다. 그도 마찬가지다. 가족과 친구 들을 통해 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는다. 언제나 변함없이 아름다운 공지천의 노을을 닮은 춘천은, 그래
김민혜는 밝다.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 춤을 알려주는 걸 좋아한다. 무용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걸 공유하려 노력하고 교감한다. 그는 무용이 낯선 사람들이 무용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가 7년간 무용을 강의하면서 알게 된 건 단 한 명도 무용이 어려워서 못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무용을 접하고 생각보다 쉽고 너무 즐겁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몸을 움직인다는 두려움을 기쁨으로 바꾸는 게 그의 일이다.“사실 한국무용을 취미로 갖기는 어렵잖아요. 어
어릴 때부터 그림에 흥미가 많았지만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김민지는 2년 전 춘천 토박이인 남편을 따라 춘천으로 왔다. 맛난 빵집을 찾아 사람들에게 소개하다 보니 자연스레 인스타툰을 하게 됐다.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춘천댁 J’로 활동하는 그는 더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그림 실력과 이야기 발굴에 더 매진하고 있다. 김민지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흥미가 많았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친구들과 떡볶이를 사 먹을 돈으로 그림 재료를 사 모았고, 유행하는 드라마를 볼 시간에 그림을 더 잘
춘천에서 나고 자란 김민영은 청소년 시기에 학업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자신이 돋보이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누군가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들어주고 알려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방송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론적인 것보다 현장 경험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 예능프로그램 방송 작가에게 메일을 보내 방송 작가의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기도 했다.카페 서빙이나 물류센터에서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에도 문화예술 분야나 방송·영상편집·글쓰기 등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20년 동안 세 아이의 엄마로 전업주부로 살던 김라윤이 라인댄스 강사가 된 것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의 일이다.“원래는 취미로 라인댄스를 하고 있었어요. 코로나가 터지면서 홈플러스 문화센터가 문을 닫자 같이 댄스를 하던 분들이 그럼 우리끼리라도 모여서 연습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어요. 그게 시작이 되어 자격증을 따서 강습을 시작했죠.”그에게 코로나19는 기회였다. 주민센터도 문화센터도 다 문을 닫자 갈 곳 없는 수강생들이 그를 찾아왔다. 틈새시장이 생긴 것이다. 비대면 수업의 필요성도 느껴 영상을 찍었고 그러
10년간 교사로 지내며 학생들을 만난 김다인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무엇보다 정서발달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더 깊게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지는 못해 늘 아쉬웠다. 교사로 일하면서도 스스로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는 그냥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떤 일에서든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학교 밖에서 아이들의 정서발달을 지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답을 얻었다. 10년간 학교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의를 다해 아이들을
차 없이는 이동이 불편한 요즘이다.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생업이나 직장 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기본적으로 운전면허증을 취득해야 한다. 김남은은 춘천에서 초·중·고를 나와 자동차운전 전문학원에서 학감으로 일하고 있다. 전반적인 학원의 운영과 경영은 물론 강사와 수강생 관리가 그의 주된 일이다.이제 춘천에 남은 자동차운전학원은 단 두 곳뿐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학원이 없는 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학원이 잘 운영된다고 오래 꾸준히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은 내가 좋아해서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일과 삶의 균형이
자전거 마니아 김금식은 춘천으로 주거를 옮긴 지 올해로 13년이 되었다. 자전거 대여점 ‘오후oho’를 운영하며 홈페이지 제작 일을 병행하고 있다. 춘천으로 이사하면서 학창시절부터 종종 탔던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했다. 자전거가 좋아서 시작한 자전거 대여점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퇴계동, 공지천을 가로지르는 효자교 근처에 있는 자전거카페 ‘오후oho’의 주인장 김금식이 직장을 그만두고 자전거 대여점을 시작한 건 2015년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자전거를 타긴 했지만, 2010년 춘천으로 주거를 옮기면서부터 자전
인생의 대부분을 춘천에서만 살아서 딱히 춘천이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춘천학연구소 학예연구사 김근태. 그는 춘천 스스로 ‘낭만과 추억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지우고 있는 듯해서 못내 씁쓸하다. 수도권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춘천이 인프라를 아무리 잘 갖춘다고 하더라도 수도권을 따라갈 수는 없기에 적어도 춘천은 거대화나 산업화 등 경제적인 성장과 지표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외형적인 성장에 치중하지 말고 주말이나 휴가에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관광도시, 또는 휴양도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누구나 쉬면서 재
춘천시청 사내 아운서 길나연의 주된 업무는 매주 시정뉴스를 제작하고 시에서 주최·주관하는 행사의 사회를 보는 것이다. 춘천이 고향이지만 젊은 시절 큰 도시에서 살고 싶어 서울에서 일하다 8년 전 춘천시에 취직하면서 다시 춘천에 자리를 잡았다. 생각보다 일직 서울 생활을 접은 게 아쉽지만, 지금의 춘천 생활에 만족한다. 서울에서 똑같은 일을 할 때는 겉도는 이방인 같아 마음 붙이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서울에서 더 살고 싶었던 까닭은 문화예술 인프라가 춘천보다 좋기 때문이었다. 내한공연도 주로 서울에서 이뤄지고, 사람에 좀 치이더라도
원주에도 살아보고 강릉에도 살아본 권혁진은 각 지역이 다 살기 좋지만, 춘천과 궁합이 가장 잘 맞는다고 말한다. 한문 고전을 공부하고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처지에서 보더라도 춘천은 문화유산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이 좋다. 한문으로 된 문헌자료가 많고 문화유적이 풍부한 것이 춘천의 매력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올해 7월 ‘도서출판 산책’에서 《문학기행》을 새로 출간하고 ‘강원의 문인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달았다. 전작 《조선의 핫 플레이스, 강원의 명소》가 장소 중심의 글이라면, 신간은 인물 중심의 글이다. 강원
춘천시립예술단에 입사한 지 5년째인 고지훈은 처음에는 시립교향악단 관련 업무로 시작해 지난해 11월부터 시립청소년교향악단·시립청소년합창단·시립국악단 등의 공연기획을 담당하고 있다.지금은 성격이 전혀 다른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스스로 공부하는 중이다. 국악이든 서양음악이든, 또는 연극이나 인형극 등 장르에 따라 각각의 단체 분위기 또한 다르지만, 공연을 준비하면서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할 수 있는 한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19를 전후해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
경기정은 춘천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냈고 강원대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서울 설계사무소에 취직해서 설계 일을 하다가 2012년에 춘천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조경 설계 일을 하고 있다. 주로 시청이나 군청, 강원도 내 설계 용역을 수주해서 설계하는 업무를 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공원과 정원 설계를 많이 하고 있다.설계 일은 3D 업종에 가깝다. 오랫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야 하고 야근이 많아서 밤새는 일이 많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시작했지만, 이제는 18년 정도 일해 왔기 때문에 힘들게 일하지 않고 충분히 즐기면서 일하고
강성호는 10여 년간 진해에서 해군 장병들을 위한 통합병원에서 의료 관련 지원업무를 했고, 전역 후 보건소에서 31년간 근무했다. 평소에 산을 좋아해 등산을 즐겼던 그는 은퇴한 뒤 ‘춘천생명의숲’에서 숲해설가 과정을 통해 전문 자격을 갖춘 후 양구수목원에서 1년 동안 근무했다. 숲해설가는 등산객이나 자연휴양림을 찾는 관광객에게 숲의 생태와 역사 등을 설명해 주는 사람이다.그의 역할은 숲해설가에 그치지 않는다.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유아숲지도사와 산림치유사로서 활동하면서 2019년에는 숲의 공익적 가치 실현을 위해 설립된 산림문화
강봉덕은 춘천의 숨은 보물이다. 이 보물 같은 사람이 진짜 금은보화를 팔고 있으니 재밌다. 온의동 롯데마트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있는 ‘보화스위스’의 대표가 바로 그다. 어려서부터 손으로 뭘 만지고 조몰락거리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맥가이버처럼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었던 거다. “춘천은 일 때문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보화스위스 포천점에서 일하다가 2010년 2월 롯데마트가 오픈하면서 왔으니 벌써 13년이 넘었네요.”춘천은 그에게 추억의 장소였다. 1990년대 초반, 꽤 친한 지인이 강원대 출신이라 함께 중도에
평창이 고향인 강문식은 강원대 토지행정학과에 입학하면서 처음 춘천에 왔다. ‘봄이 흐르는 천’이라는 지명처럼 그에게 춘천은 봄처럼 따뜻하게 다가왔다. “소양강·춘천호·의암호와 공지천 등 호반의 풍경이 마음에 안정을 주었습니다. 춘천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직장 입사 초기 서울에서 근무하다 춘천지점 발령을 지원해서 1998년부터 살고 있으니 춘천은 제2의 고향입니다. 춘천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이 좋습니다.”그는 2005년 퇴계동 금호·한주아파트 앞에서 창업한 ‘태산부동산’을 지금까지 그대로 운영해오고 있다. 첫 직장 퇴사 후 공인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