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 년 역사의 뒷이야기로 차상찬은 인조반정 중 조선의 전통적 여인상을 벗어나 반정의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한 세 여걸을 소개한다. 세 여걸 중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중인의 딸로 태어나 자기 집 머슴을 신랑으로 택해 술장사로 큰돈을 벌고, 신랑을 인조반정에 참여시켜 출세를 시킨 정씨 부인이다. (3) 이기축(李起築) 부인 정씨[전략] 그 처녀는 아주 대담하게도 부모에게 말하되, 저는 벌써 남편 될 사람을 선택하여 놓았으니까 다만 결혼식 할 것이 문제이지 다른 곳과 약혼은 문제 삼지 말라고 하였다. 그의 부모는 깜짝 놀라
차상찬(車相瓚,1888~1946)은 일제강점기 최고의 잡지 언론인이다. ‘일제 때의 잡지인 중에서 한 사람을 내세운다면 누구일까?’라는 화두에 ‘그야 차상찬이지…’하고 입을 모았다( 『한국잡지백년』 2)는 대목은 그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개벽》· 《별건곤》· 《혜성》· 《제일선》 등 개벽사 잡지 발간을 주도하면서, 민족문화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부락조사’, ‘조선구관조사’ 등 일제가 벌인 각종 조사사업과 식민지 지배 정책에 대항하여, ‘조선 문화의 기본조사’, ‘조선의 자랑’ 등 다양한 특집을 기획하고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춘천 출신 저널리스트 청오 차상찬(1887~1946)에 대한 최초의 종합 연구서 《차상찬 연구 : 일제강점기 문화운동의 선구자》가 강원문화교육연구소의 기획으로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에서 출판됐다.청오 차상찬은 올해로 창간 100주년을 맞이하는 잡지 《개벽》의 창간동인이다. 보성전문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강사로 활동하다가, 1920년 근대 종합잡지의 효시인 《개벽》 창간동인으로 ‘개벽사’에 합류하면서 저널리스트로서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선생은 《개벽》을 비롯한 ‘개벽사’의 《어린이》, 《별건곤》
차상찬은 신동면 송암리(현 춘천시 송암동)에서 출생한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춘천 출신의 지식인이다. 그는 개벽사의 정경부 주임, 편집국장, 발행인, 주간 등을 맡으며 700여 편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글을 남겼다.차상찬전집편찬위원회(위원장 정현숙, 이하 편찬위) 연구진들은 2017년 봄부터 차상찬이 쓴 방대한 글들을 조사했다. 이 중 먼저 《개벽》에 발표한 글을 정리하여 《차상찬 전집》(1.2.3권)을 발행하기로 했다. 차상찬은 개벽에 글을 실으면서 본명 외에도 다양한 필명을 사용했는데 그 종류가 확인된 것만 무려 48종에 이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