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리유원지는 가정리 가정나루 부근 미루나무 밭 옆에 있었다. 그 당시에는 현재 보건소 뒤쪽에서부터 황골까지 백사장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모래(백사장)가 길게 늘어져 있고, 한쪽에는 미루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앞쪽으로는 청평호가 잔잔하게 흐르고 있어 놀기 좋았다.

유원지를 운영한 기간은 9년이었다. 그때 놀러 온 사람들에게 텐트 한 대당 500원의 자릿세를 받았는데, 하루에 평균 100만원 정도가 걷혔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자릿세는 청소비 명목이었다. 자릿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을에서 유원지 관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외부에서 건달들이 와서 행패를 부린다거나 하면 관리요원이 모두 막았다. 가정리유원지를 운영하는 동안에 한 명의 익사자도 없을 정도로 철저히 관리를 했다.

관광버스가 유원지부터 현 의암기념관 앞까지 줄 지어 서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왔다. 옛날에는 자가용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관광회사에서 관광버스로 행락객을 실어 날랐다. 그래서 여름이면 아예 가정리에 관광회사 직원이 와서 상주를 했다.

가정리 나루 및 유원지 터, 지금은 낚시꾼만 찾고 있다.

마을에서는 각 반별로 가게를 하나씩 열어 장사를 하게 했다. 밤이면 모닥불을 피울 나무를 단으로 묶어서 팔았고, 튜브에 바람을 넣어주고 돈을 받기도 했으며, 모래에 빠진 차를 트랙터나 경운기로 꺼내주고 얼마간의 수고비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여름에는 마을의 수입이 괜찮았다.

가정3리 쟁골에서 의암기념관 앞으로 흘러 청평호까지 이어지는 이 대곡천에는 모래가 많아 강바닥이 옆의 논밭보다 지대가 높았다. 그래서 비가 조금만 와도 마을의 집과 논밭이 물에 잠기기 일쑤였다. 결국 춘천시는 마을의 상습적인 침수피해를 막기 위해 모래 준설작업을 했다. 그때가 1980년대 중반이었는데, 모래가 없어지면서 유원지도 덩달아 사라져버렸다.

1. 1980년대 가정리유원지에서 행락객이 놀던 장면(사진=류연훈 제공)
2. 가정리 나루 및 유원지 터, 지금은 낚시꾼만 찾고 있다.

이학주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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