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고을마다 장이 섰다. 대개는 오일장이었다. 닷새에 한 번, 고을에서 기르거나 만든 물품들이 모여들었다. 장터는 장마당이라 불렸는데, 말 그대로 한마당이었다. 지역 골골의 산물이 살아나와 교환됐다. 온갖 물건이 있을 뿐 아니라 정이 있고, 흥이 있고, 놀이가 있고, 소통이 있었다.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큰 마당이 열렸다.

현대의 시장은 어떤가? 우리가 거리에서 만나는 상점엔 물건이 가득 쌓여 있다. 점포들이 밀집해 있는 시장엔 더 많은 상품이 얼굴을 내밀고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대기업이 생산해 내놓은 상품들이다. 시장은 그 상품들을 소개하고 팔아주는 거간의 역할을 한다. 지역의 생산자들이 만들어 내놓은 것을 지역의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고르고 선택해 구매할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된 시장이다. 공급자 중심으로 시장이 만들어진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손짓하는 마케팅의 눈가림에 이끌릴 뿐이다. 오직 생산자인 기업이나 공급자의 논리로만 이루어진 시장은 지역과 소비자를 배신한 것이다.

동네의 구멍가게가 사라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공급의 문제, 즉 예전처럼 물건을 공급하는 중간상인이 사라지고만 결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부장수, 콩나물장수, 생선장수, 채소장수, 과자장수, 잡화장수, 철물장수 등 오토바이나 작은 차에 물건을 모아 싣고 다니며 가게에 공급해주는 작은 상인들이 있었다. 저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대형유통이 그 역할을 대신하면서 대형상점이나 대형유통을 통하지 않고서는 물건의 조달이 어렵게 된 것이 구멍가게가 문을 닫게 된 사정이다. 그리고 대기업의 편의점 위주로 동네 상점이, 시장이 재편된 것이다. 구멍가게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이웃과 사람의 향기는 낯선 아르바이트생과 피곤한 대리점 주인만 있고, 지역주민의 주머니만 훑어가는 외부자본이 웃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적정가를 치르는 시장은 모두를 즐겁게 하고 장마당을 흥겹게 한다. 싼값 때문에 생산자가 생산하지 못하게 되는 불행은 내게도 불행이다. 적정가로 생산비를 보전해주어야 지속적인 생산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호혜와 상생의 시장을 만들 수 있다. 시장의 배신을 넘어 신뢰와 자유의 시장, 신명이 넘치고 흥에 겨운, 그래서 지역을 살리는 착한 소비의 한마당으로 만들어 나갈 수는 없을까?

장마당은 이웃과 지역의 주민들이 모이는 곳이다. 자연스럽게 지역의 생산물이 모이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드는 곳이다. 지역의 것들을 서로 나누는 곳이다. 당연히 로컬푸드란 말이 필요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따뜻한 정이 오가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가운데 정보를 주고받으며 사람들이 한 덩이가 되는 곳이다. 공동체 문화를 몸소 겪으며 따뜻하게 정을 모으고 나누는 마당이다. 너나없이 한 가족이 되어 상생의 웃음을 함께 한다. 말하지 않아도 윤리적 소비요, 착한 소비의 공간이다. 실물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터전이다.

요즈음 주말이면 곳곳에 프리마켓과 벼룩시장이 열린다. 많은 판매자들과 소비자들이 교감하고 물물을 교환하는 활발한 장터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괜히 신나고 흥겨운 마당이 펼쳐지는 것이다. 시민들은 새로운 시장을 경험하고 지역의 공동체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상생하는지 깨달아간다. 지역민들이, 시민들이 함께 숨 쉬는 방법을 익힌다. 얼굴에 나비를 그리고 날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어른들이 더 즐거운 거리는 흥겨움으로 들썩거린다.

생산자는 내가 만든 것을 내놓고 바꾸거나 팔 수 있는, 소비자는 사고 싶은 물건을 직접 거래해 살 수 있는 교환의 공간, 시장 본래의 기능, 자본의 증식을 위한 시장을 벗어나 대중이 어울려 살아가는 장마당을 구현하는 것이다. 현대의 시장은 따뜻한 소통의 마당이 될 수 있을까? 지역의 시대를 일구어낼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을까? 시장의 배신을 넘어 자유를 구할 수 있을까? 지난해 새로운 희망을 만든 춘천의 시민 장마당 뚝방마켓에 눈길을 모아 보자.

이천식 시민기자(강원도사회적기업협의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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