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아파하고 분노한 세월

강영희(53) 씨는 서울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 춘천사람과 결혼해 춘천시민이 됐다. 서울로 통근하다 일찍이 퇴직해 가정을 돌보고 있다가 세월호 참사를 접한 이후 2년 동안 세월호 가족과 함께 하고 있다. 이 글은 강영희 씨가 겪은 세월호 가족들의 이야기다. 2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세월호 선체인양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는 강영희 씨

2년이 지난 지금, 그때 함께 눈물 흘리며 고통스러워했던 그 많은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를 잊은 듯하다. 아마도 ‘남의 자식들이 죽은 사건’이라고 여기나 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두 번의 세월호 청문회가 열렸다. 304명이 희생된 엄청난 사건인데 국회에서 열리지 않았다. 두 번의 청문회를 통해서 우리의 의혹은 더욱 깊어졌다. 평범한 삶을 살던 엄마 아빠들은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고, 투사처럼 싸우는 사람들이 됐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다.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다. 그들의 외침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도 너무 궁금하다. 왜 구조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진실을 감추려고 할까? 이 의혹을 밝혀내야만 다음 세대에 이런 참사가 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진상규명은 현재 세월호 유가족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 다음 세대의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일이다. 나는 그렇게 현재의 나와 우리 가정, 그리고 미래의 손주들을 위해서 이 길을 걷고 있다.

우리의 이웃, 세월호 가족들 -
유가족, 미수습자 가족, 생존자


참사가 나던 날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내서 구조의 발길을 되돌리게 했던 언론, 왜곡보도와 막말을 쏟아내던 거짓 언론들, 그 언론들로 인해 세상은 유가족들을 오해한다. 자식 잃은 상처에 소금 뿌려 더 아프게 하는 일들이 참 많았다. 거리에 나가 세월호 진상규명을 외치다 보니 유가족들을 자연스레 알게 됐다. 이제 몇몇은 친자매처럼 가족이 되기도 했다. 서로 아픔을 나누며 속 이야기도 하게 됐다. 현재 130여 가정은 보상에 합의하지 않고 끝까지 진실규명을 위해 싸우겠다고 한다. 그 곁에 진실과 정의 편에 선 적잖은 국민들이 응원하며 함께하고 있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또한 아직 아홉 명이 세월호 안에 있다. 단원고 학생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그리고 교사인 양승진, 고창석, 어린 혁규와 혁규 아버지 권재근 씨, 그리고 이영숙 씨가 있다. 아홉 사람의 가족들은 이제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유가족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이들은 팽목과 안산을 오가며 청운동에서, 홍대입구에서 “내 가족이 보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제라도 지체하지 말고 온전한 세월호 인양이 이뤄지길 기도한다.

그리고 꼭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세월호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이다. 참사의 현장을 기억하며 별이 된 아이들의 눈을 보면서 헤어졌던 그들의 상처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다. 특히 화물트럭 기사로 세월호를 탔던 김동수 씨의 가정을 광화문에서 만나 깊이 알게 됐다. 그는 배가 기울자 배에서 나왔다가 자신의 막내딸 같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다. 커튼을 줄 삼아 사용하며 아이들을 끌어올렸고, 커튼이 찢어지자 소방호스를 허리에 감고 정신없이 아이들을 구했다고 한다. 그러다 더 구하지 못할 상황이 돼 돌아오는데 “아저씨, 저도 구해주세요”라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며 눈물지었다. 그가 해경에게 “아이들을 더 구하지 못하고 왔다. 가서 구해 달라” 부탁하니 “걱정 말라”고, “지금 수백명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단다. 하지만, 그 말은 거짓이었다.

그는 지금 그 상처에 시달리고 있다. 보통 수학여행단이 배에 타면 그날은 화물기사들이 잠자는 것을 포기한다. 하지만 단원고 아이들은 달랐다고 한다. 밤이 되니 수면시간에 조용했고, 식당에서도 다른 학교의 경우 보통 식사 차례 질서유지를 위해 방송을 하는데, 단원고 아이들은 저절로 한 반씩 순서를 지키며 배식을 했다고 한다. 그 착한 아이들, 가만있으라 하니 가만있었던 그 아이들 생각을 하며 ‘파란 바지의 세월호 의인’으로 불리는 김동수 씨는 오늘도 아픔을 견디고 있다.

할 수 있는 일로 가볍게 시작하자

나는 지금 무릎에 이상이 생겨 치료받느라 잠시 피케팅을 멈추고 있다. 다만, 가장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미수습 가족들, 그들이 피켓을 드는 청운동에 매주 한 번 가서 돌아오지 못한 아홉 명의 사진이 있는 피켓을 들고 화단난간에 앉아 있다. 현재는 비교적 가볍게 끈을 이어가는데 멈추지 않다보면 또 적극 나서리라 다짐해 본다.

안산 치유공간 ‘이웃’의 이명수 대표는 한계레 신문 칼럼에서 ‘진실의 힘’이 만든 방대한 책,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소개하며 “이걸 하면 된다”는 제목으로 그 책을 읽으라 하고, 아니면 사서 꽂아놓기라도 하라고 권한다. 진실규명을 위해 애써 만든 책을 한 권 사는 것, 노란리본 고리를 가방에 달고 추모와 진실규명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 노란 배지를 달고 다니는 등 각자 할 수 있는 것으로 아직 잊히지 않은 참사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기억하다 보면 정의를 요구하는 행동에도 함께 참여할 기회가 올 것이다.

아이가 수장 당한 슬픈 중에도 온 국민을 앞에서 이끌며 진실을 향해 싸워 온 유가족들, 그리고 아직도 찾지 못한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이 슬픈 꿈이 되어버린 미수습자 아홉 사람의 가족들, 세월호에서 힘껏 아이들을 구하고도 사회의 냉대를 겪고 살아가는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 씨와 생존학생, 여러 생존자들의 아픔. 이 모두를 위해 맘 다해 기도해주길 부탁드린다.

강영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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