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아이 키우는 찬서 아빠, 박영락 씨

온통 웃고 즐기며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넘쳐나는 5월을 흔히 ‘가정의 달’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조금 다르지만 그렇다고 별반 다르지 않은 가족 이야기를 꼭 한번 담고 싶었다. 그런 바람 때문인지 온라인 공간인 ‘춘천 좋은 엄마 카페’에서 혼자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올리는 박영락(37세) 씨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쉽지 않은 인터뷰 요청에도 흔쾌히 응한 ‘찬서 아빠’ 박영락 씨와 육아와 가족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박영락 씨가 춘천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작년 11월 춘천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서울 인근에서 쭉 살았다. 그런 그가 이 낯선 춘천에 자리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찬서(5세)랑 평소에도 캠프를 자주 다녀요. 캠프를 다니면서 찬서가 어릴 때는 시골에서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쭉 해왔어요. 그러다 우연히 오동초등학교 근처까지 여행을 오게 되었는데, 항상 도시에서만 살던 제게 시골학교 전경이 아주 예뻤어요.
‘아~! 여기에서 우리 찬서가 자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큰 맘 먹고 작년부터 춘천살이를 하고 있네요.
 
적어도 찬서가 커가는 동안에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생명을 만나고, 편안하게 뒹굴면서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갖게 해주고 싶었어요. 도시와는 다른 이 낯선 환경에 저도 찬서도 모두 신기해하고 즐기고 있어요. 찬서와 저는 지금 함께 추억을 만들고 있는 거죠.

남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은데, 영락 씨는 태어날 때부터 찬서를 홀로 키우기 시작했다.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빠 홀로 아이를 키운다고 하니 주변으로부터 참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남자는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 분유는 탈 수 있느냐? 육아만 하면 벌이는 어찌할 거냐?’ 격려까지 바란 것은 아니지만, 온통 부정적인 이야기들만 넘쳐났죠. 사실 제겐 ‘아이 수면 시간은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하나?’, ‘기저귀나 아기용품은 어디가 싸고, 어디에서 사야 하나?’에 대해 도움 되는 말이 더 중요했는데 말이죠.(웃음)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과 좀 멀어지게 되더군요.

어린 찬서 곁을 떠날 수 없었죠. 일도 하지 못한 채 육아에만 매달렸습니다. 돈도 벌지 못해 구청에서 생활비 보조까지 받아 가면서 찬서를 키웠어요. 지금은 그래도 좀 나아졌죠. 제가 미대 출신이기도 하고, 손재주도 있는 편이라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아이들 용품을 의뢰받아 판매하고 있고요. 4개월 전부터는 푸드트럭을 장만해서 생활비 마련을 위한 부업도 하고 있습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도전이고 모험이다. 그럼에도 늘어나는 한부모들, 특히 영락씨처럼 남성 한부모를 지원하는 시설이나 제도는 미비한 것 같다.

온라인에서도 홀로 아이를 키우는 아빠 이야기를 자주 접해요. 과거에는 이혼을 하면 대개 엄마가 양육을 하고 아빠가 경제적 지원을 하는 형태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아이 양육에 대한 권리를 아빠가 가지는 경우가 잦거든요. 드라마나 방송을 통해 여자 혼자 아이 키우는 것이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다 보니, 쉽게 양육권을 포기하는 엄마들 이야기를 자주 접해요.

혼자 아이를 키우는 아빠들은 늘어나는데, 이를 위한 사회적 지원이나 국가 시설은 거의 없어요. 미혼부모들의 경우, 여성을 위한 시설(미혼모지원시설)을 지자체마다 한 두 곳은 있지만, 미혼부나 남성 한부모를 위한 시설은 전국에 세 군데 정도만 있어요. 남자는 돈을 쉽게 벌 수 있고, 재혼하거나, 육아 시설에 맡길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쉽게 말해 남성이 양육권을 가지면 여성보다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편견이 도리어 아이 육아에 전념을 못 하게 하는 것 같아요. 결국, 아이를 다른 사람이나 보육시설에 맡기게 되고, 아빠들은 돈만 벌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죠.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는 개인이 겪는 어려움을 개인이 해결하게 하는 용한 재주가 있다. 부모 또한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여유와 쉼이 필요한데도, 개인을 둘러싼 그 모든 문제를 개인의 몫이라 너무 쉽게 생각한다.

육아는 부부 둘이 매달려도 힘들 때가 많다. 물론 육아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전담 비율이 높은 엄마가 아빠보다는 훨씬 힘들다. 그래도 둘이라면 역할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기는 하다. 재혼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우리 찬서 키우면서 저한테 있던 엔도르핀과 호르몬이 다 닳아 없어졌나 봐요.(웃음) 사실 찬서에게 좋은 엄마가 될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고, 지금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 보니, ‘찬서가 행복하게 자라는데 과연 지금 엄마가 꼭 있어야 하나?’라고 저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많은 것 같아도, 찬서가 나이들고 제가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지금처럼 둘이 같이 지낼 시간이 많지 않더라고요. 요즘 초등학교 6학년만 되도 엄마, 아빠하고 같이 지내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친구들 생기고 자기 생각이 생기면 제게 멀어질 텐데 그때까지만이라도 제가 아빠이자 엄마가 되어 주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본인의 삶은 접고, 아이에게 맞춘 삶 같아 보인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찬서가 자라면서 아빠만 있어서 무언가 부족하단 생각이 들지 않도록 키우고 싶었어요. ‘엄마가 없어서 나는 이렇게 먹고, 이렇게 입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음식이나 빨래, 집안일 그리고 육아까지 다른 엄마처럼 하려고 꽤 노력하고 있어요. 물론 제가 남자고, 여성이 가진 모성애는 가질 수 없겠지만, 찬서가 ‘아빠가 엄마지’, ‘우리 아빠가 다른 엄마처럼 나한테 해주니까 나는 다른 친구들과 별다르지 않아!’라고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 바람이 지금껏 찬서를 키우는데 큰 힘이 되어 왔던 것 같아요.

‘아이 바라기’란 표현이 적합할까? 영락 씨에게 지금은 온통 찬서의 행복과 차별에 따른 아픔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강했다. 아빠로서, 남자로서, 인간으로서 욕구와 정체성도 있을 텐데 어찌 그리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저도 처음 찬서 키울 때 다른 사람처럼 예전과 같이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런데 찬서가 이 세상에 오게 된 것은 자기 결정이나 의지가 있던 것이 아니잖아요. 엄마가 없는 환경이나 앞으로 살아갈 삶도 찬서는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거잖아요. 그에 비하면 저는 30년 넘게 제 마음대로 살았거든요. 그런데 아이에게는 절대적인 이 시기를 또 저를 위해 산다는 것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찬서가 자기 생각을 갖추고 행동할 수 있을 때까지는 찬서를 위해 보내는 것이 맞단 생각을 했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나 아빠들이 꽤 많다고 한다. 대부분은 그런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 일단 편견을 갖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가 아이를 혼자 키운다고 공개적으로 밝힌다는 것도 큰 용기일 것이다.

저는 그런 태도들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혼자 아이를 키우지만, 다르지 않다.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이 키우고 있다.’ 이렇게 세상에 알리고 싶었어요. 제가 큰 역할을 할 수 없지만, 저와 비슷한 상황인 사람들이 떳떳하게 세상에 나설 수 있는데 조금이나 보탬이 되자는 생각에 제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밝히고 있어요.

장래가구추계(통계청)에 의하면 부부+미혼자녀로 구성된 소위 전형적인 가족 구조는 2000년 49.8%였으나, 2030년에는 25.4%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였다. 반면 한부모의 비율은 2000년 8.8%이지만 30년 후에는 11.2%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가족 구조가 다양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족’ 하면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이가 모인 모둠을 우린 자연스레 떠올린다. 이 ‘자연스러운 연상’은 그렇지 않은 가족에게는 ‘편견’이 된다. 다만 다양한 가족들이 있을 뿐 아닐까. ‘다름’은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정상’은 상대적인 가치일 뿐 절대적 가치가 될 수 없다. 찬서를 위해, 찬서의 정서적 고향으로 춘천을 택한 영락씨가 평범한 우리의 이웃 가족으로서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우리에게 들려주기를 바란다.

 

강종윤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