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의 실상에 대한 증언의 기록이다. 레비는 1944년 2월 독일 나치가 운용하는 아우슈비츠의 모노비츠 수용소로 이송돼, 1945년 1월 독일군이 퇴각하고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를 점령할 때까지 수용소에 수감돼 있었다. 그가 유대계 이탈리아인이었기 때문이다. 레비는 1986년 마지막 저작으로 이 책을 발표하고, 1987년 4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 책은 수용소 경험 이후 40여년의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 레비가 여러 각도에서 도출해낸 깊은 사유의 결과물이다. 레비의 사유가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아우슈비츠와 같은 비극과 세계대전을 일으킨 존재로서, 우리 인간은 ‘인간성’의 추한 밑바닥을 드러낸 폐허 속에서 어떻게 하면 새로운 ‘인간성’을 구현해낼 수 있는가?

독자에게 이 책을을 권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레비는 이 책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다룬다. 레비는 이들이 어떻게 폭력적 권력에 타협하는지 관찰하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묻는다. 수용소에는 나치와 연결된 지배계층 외에 그들에게 협력하는 포로들이 존재했다. 이 특권층 포로들의 공간이 ‘회색지대’다. 이들은 억압자들에게 전염되고, 자신들을 그들과 동일시하며,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을 휘두른다. 물론 레비는 특권층 포로들이 ‘명령에 따른 강제상태’에서 죽지 않기 위해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들을 심판할 자격이 누구에게도 없다고 단언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특권층 포로들은 전체 포로에서 적은 숫자였지만 생환자 무리에서는 다수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포로들 보다 평균 이상의 권리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특권층 포로들은 그만큼 생존할 확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존하지 못한 ‘가라앉은 자’들보다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며, 무감각한 회색지대 협력자들이었다.

둘째, 레비 본인이 생과 사의 경계에 처해있던 희생자의 한 사람이었음에도, 살아남은 자로서 치열한 성찰과 자기 객관화의 정신을 드러낸다. 레비 자신은 동료들에게 폭력적이었거나 특별히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았기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를 대신해서 살아남은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과 계속 대면했다. 레비는 생환자로서 “인간적 연대감의 측면에서 실패했다는 자책과 도움을 베풀지 않은 데 대해 자신이 유죄라고 느끼는 수치심”을 지니고 있는 듯 보인다. 오히려 동료에게 해를 끼치고 폭력을 휘두른 생존자는 자신을 유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레비의 증언이 지니는 가치는 그가 아우슈비츠 비극에 희생당한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반성적 사고를 했다는 것에 있다.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이 막을 내린지 7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레비는 종전 이후 벌어진 캄보디아의 대량학살이나 핵무기의 대재앙 등과 같은 인종학살이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지난 세월호 참사에서 구조되지 못한, 가라앉은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를 지켜본 우리들은 운 좋게 구조된 자들이나 다름없다. 세월호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 생각하면 이 책이 던지는 의미는 한층 깊게 다가온다. 레비는 살아남은 자로서 성찰하고 반성하며 증언했다.

송종민 (책읽는춘천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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