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장벽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베를린 포츠다머광장(Potsdamer Platz)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악회를 기다리고 있다. 동과 서로 나뉘었다가 1990년에야 국민들의 손에 부서진 베를린장벽. 장벽이 지났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한국문화원’에서 연주회가 열렸다.

독일인 관객에게 “가인과 가객 : 서양에 한국의 정서와 얼을 전하고 매혹시키는 풍류객의 소리“ 를 연주하는 강민형(왼쪽)과 정은비(오른쪽).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이 베를린장벽 위에 한국문화원을 세우고 통일을 염원하는 한국기와단청 모양의 ‘통일정’을 세웠고, 분단과 통일을 경험한 독일은 한국문화원을 더욱 각별히 여기고 있다.

이 의미 있는 장소에서 열리는 음악회의 관객들은 대부분 한국의 두 젊은이가 그려내는 음악회에 한껏 기대감이 부푼 독일인들이었다. ‘음악과 함께하는 세계여행(Eine musikalische Weltreise)’이라는 제목을 단 이 음악회에서는 플루티스트 강민형(24)과 마림비스트 정은비(29)의 독주와 듀엣이 연주된다. 그러나 오늘은 이들을 서양악기의 이름을 딴 플루티스트와 마림비스트라 부르기보다는 ‘가인과 가객’이라 부르는 것이 더 잘 어울리겠다. 전문 예인의 시대라 불리는 조선 후기의 풍류의 주역인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가인(歌人)과 한국의 전통 가악인 가곡, 가사, 시조 등을 짓고 부르는 사람을 뜻하는 가객(歌客) 말이다. 어쩌다가 한국의 두 풍류객은 먼 나라 독일 땅에서 ‘음악과 함께하는 세계여행’을 연주하게 된 것일까?

플루티스트 강민형은 15세의 나이에 베를린예술대학교에 영재학생으로 입학했다. 동양에서 온 어린 소년의 플루트 연주에 감동한 독일인들은 그의 연주회를 찾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앞 다투어 그의 연락처를 얻어내 또 다른 연주회에 초청했다. 한국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하기를 좋아했다던 그는 독일에 오자마자 연주생활을 시작하며 유럽의 여러 도시를 다녔다. 어린나이부터 플루트 하나를 들고 여러 국가를 ‘풍류’하며 성장해왔다.

반면 마림비스트 정은비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해외여행을 다녀와 자랑을 해도 부럽지가 않았더란다. 신혼여행을 가더라도 최대 제주도로 가고 싶었다는 그녀는 ‘풍류객으로의 삶’을 두려워했다. 춘천 출신인 그녀는 대학진학 때문에 간 서울도 ‘유학’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연주초청을 받아 한 번 외국에 다녀 온 그녀는 ‘이것이 나의 길’임을 직감하고 곧장 ‘풍류객으로의 삶’을 선택했다. 그녀는 동양에서 온 역동적인 여성 타악기연주자를 원하는 독일과 유럽 곳곳에서 연주생활을 겸하느라 고향인 한국에도 연주회가 있어야만 잠시 방문했다가 곧장 독일로 나가기 바빴다. 두 이방인은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사귀었고, 다양한 경치를 마주했고, 다양한 음악과 언어를 익혔다. 두 사람은 한국인이지만 보통 독일어로 대화한다.
독일인 관객에게 ‘가인과 가객 : 서양에 한국의 정서와 얼을 전하고 매혹시키는 풍류객의 소리’를 연주하는 한국의 두 젊은 연주자들. 그들이 주독일 한국문화원으로부터 음악회 초청을 받았을 때 ‘세계여행’을 주제로 한 연주회를 준비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랜 이방인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해 온 각국의 음악들, 다양한 문화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이 또 있을까? 이들은 이미 풍류객으로의 삶을 받아들였고 즐기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여행지로 사랑받는 아름다운 나라이자 아름다운 음악을 갖고 있는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을 다른 선진국들 사이에 동등하게 나열하고 소개하길 원했다.

연주회 프로그램 순서대로 작곡가의 국적을 나열하자면 러시아, 독일, 미국, 프랑스, 일본, 대한민국, 이탈리아, 아르헨티나다. 이름만 들어도 연상되는 자연경관, 음식, 의상, 건축물, 음악 등 개성이 뚜렷한 국가들이자, 한 번쯤은 꼭 방문하고 싶은 사랑받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날 연주된 모든 곡들은 그 나라의 색채를 분명하고 풍부하게 표현한 곡들이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국가가 한국, 바로 우리의 고국이었다. 한국을 가장 정확하게 그려낸 곡을 결정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0년이 채 되지 않은 외국생활에 무슨 엄살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독일의 국악인 클래식음악을 독일에서 연주하고 독일인 관객들에게 독일어로 해설하기까지는, 치열하게 집중하며 남 몰래 흘린 눈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일 테다. 하지만 밥보다 빵을 더 많이 먹는 두 사람일지라도 아리랑을 매운 코끝과 가슴으로 부르는 두 사람이기도 하다. 외국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 같다가도 ‘나는 한국인도 아니고 독일인도 아닌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들면 밤을 하얗게 지새울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는 두 사람은 결국 한국 곡을 결정하지 못 한 채, 작곡가 성용원 교수를 찾았다. ▶38호에 계속

정은비 시민기자 (베를린·타악기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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