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
 

                                                               최승호



멍청하게 만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지워버린다.
멍게는 참 조용하다.
천둥벼락 같았다는 유마의 침묵도
저렇게 고요했을 것이다.
허물덩어리인 나를 흉보지 않고
내 인생에 대해 충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멍게는 얼마나 배려 깊은 존재인가.
바다에서 온 지우개 같은 멍게
멍게는 나를 멍청하게 만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지워버린다.
멍!
소리를 내면 벌써 입안이 울림의 공간
메아리치는 텅 빈 골짜기
범종 소리가 난다.멍.
 
 
--멍게를 횟감으로 보지 않고 수행자로 보다니 역시 시인의 눈은 다르다. 바다 속 바위에 가부좌 틀고 앉아 지나가는 물고기나 구경하는 멍게의 모습에서 시인은 유마거사를 본 것이다.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불립문자의 차원이다. 침묵이 그 어떤 언어보다 전달력이 강할 때가 있는 것이다. 침묵해야겠다. 천둥 벼락 같았다는 유마거사의 침묵이야 흉내도 못 내겠지만…. 내 침묵이 음악 같았으면 좋겠다. 여름이 문 닫기 전에 바다에 다녀와야겠다. 피서객들 빠져나간 해변에 고요히 앉아 멍 때리다 와야겠다.

시 ‘멍게’는 춘천 출신의 시인 최승호의 열한 번째 시집 《아무 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에 수록된 시다.

정현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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